예미녀의 맛깔난 예수(57)
오늘이 꼭 100년 전,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날입니다. 그리고 내일, 재일 조선인들의 관동대학살이 시작되었고요.
어제 저녁에 영양제를 맞았습니다. 내일 일본 출국을 앞 둔 준비입니다.
코로나 끝에 체력이 떨어져 식은 땀이 흐르고 자꾸 주저앉게 되어 탈 없이 추모제를 치르고 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일정이 예정보다 두 배로 길어져 희생된 6,661명의 넋을 하나하나 보듬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학살 당한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 일용직 노동자에, 부두 하역 잡부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씨알(민초)이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2년 전, 스위스 안락사 동행을 할 때도 영양제를 맞고 갔습니다. 영양제 값도 7만원에서 8만원으로 올랐더라고요.
그때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지레 제가 먼저 죽게 생겼드랬거든요. 가방에 우황청심원까지 챙겼지요. 두 병 가져가서 조력사 벨브 돌리기 직전에 한 병 마시고, 한 병은 남은 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그때 참 마음이 처절하여 출국하려고 인천 공항으로 가는 내내 고립무원의 심정이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영양제를 맞으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생명과 평화를 주십시오. 먼저 저를 치유하셔서 제게 사랑과 생명과 평화가 임하게 하여 주시고, 나 하나의 실천이 씨알이 되어 내 가족에, 내 주변에, 내 공동체에, 내 나라에, 주변 국가에, 전 국가에, 온 인류에 사랑과 생명과 평화가 동심원처럼 번져 가게 하여 주십시오."
시간 지나 돌이켜 볼 때 '그때 내가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지요. 제게는 2021년 8월 26일, 안락사하겠다는 고인의 마지막 소망을 따라 스위스를 함께 간 것이 그렇습니다. 비록 고인의 생전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지만, 내가 그래도 사람다웠다는, 누군가에게 진정 필요한 사람이 한 순간이나마 될 수 있었다는,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이 들게 하는 일이 그 일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일이 자주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뒷간을 치는 빗자루 몽뎅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저는 별로 행복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행복이란 덕담이 어색합니다. 그래서 지인들께 "제게 행복하라고 마시고, 의미와 보람으로 살라고 해 주십사"부탁합니다.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그것이 제게는 행복이라고. 삶의 동력이자 열정이라고.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요한계시록 3장 15절
잘 다녀오겠습니다. 여정은 내일 2일(토)~ 7일(목), 5박 6일이지만, 제 글로는 11일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아래 동영상으로 추모제 참가 인사를 대신합니다.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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