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금요별식
제가 오늘은 도발적이고 발칙한 소리를 하려고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제사 지내지 말자는 겁니다.
안락사(조력자살) 반대로 별점테러를 당하는 지경에, 이번에는 성균관과 유림(儒林)으로부터 테러를 당하게 생겼습니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한 번은 죽을테니 제 소신대로 살다 죽어야겠습니다.^^
저는 제사라면 이골이 난 집에서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제삿상 차리는 데 익숙했지요. 그 지긋지긋한 제사에서 벗어나려면 제사 안 지내는 집으로 시집을 가는 길밖엔 없었지요. 그거 하나는 소원대로 됐습니다.
제 어머니는 결국 제사 지내다 돌아가셨습니다. 추석 차례 뒷정리로 행주 빨아 너시다가 베란다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되어 수술 후 못 깨어나셨습니다. 당신은 평생 조상 제사를 지내오셨지만 정작 본인은 젯상을 받지 못하시죠. 추석 차례와 맞물려서 따로 드릴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요.
어머니는 오히려 그게 만족스럽고 다행이라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하면 주변에 폐를 덜 끼칠까, 어떻게 가뿐히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 평소 늘 그 생각으로 살아오셨으니까요.
그래서 그저 성묘로 대신합니다. 그것도 가족들 각자 시간되는대로 따로 갑니다. 엊그제 다녀온 큰 언니네는 조카가 홍옥사과 하나 올렸다네요. 외할머니는 사과를 좋아하셨다면서. 사진이 예쁘네요.^^
저는 그나마 가지도 않았지요. 대신 신나게 놀았지요. 어머니도 아마 좋아하셨을 거예요. 당신의 막내딸이 당신 보러 오는 대신에 나가서 논 것을. 생전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으니까요. 자식들을 야단치거나 서운해 하시거나 도무지 뭐라고 하시지 않는. 저는 뒤늦게 어머니를 닮으려고 부단히 노력중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내 안에 계시죠. 차가운 땅 속이 아니라. 그래서 저는 늘 엄마와 함께 있지요. 따로 성묘를 가지 않아도.
오빠, 아버지, 어머니 순서대로 쉬고 계시는 아주 신씨 가족묘
자, 본론으로 돌아가, 제가 어떤 말로 제사를 지내지 말자 했는지, 유림으로부터 테러를 당하게 생겼는지 아닌지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읽고 판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주말이네요.
저는 다음주에 다시 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로 돌아오겠습니다.
https://www.the-p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