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15

by 신아연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아주아주 특별한 시간을 가졌고, 이번 주도 그럴 것 같습니다.



호주에서 '붕어빵 아들'이 왔거든요. 토요일 아침 불쑥 전화가 오길 "엄마, 나 지금 이태원에 있는데 저녁에 만날까?" 이러는 거예요. 한국 온다는 일말의 낌새도 없이 기습으로 사람 제대로 놀래키네요. ㅎㅎ



휴가를 낸 것도 아니라서 일보따리 싸들고 와 낮에는 호텔방에서 근무하고 일과 후 함께 저녁 먹는 것이 전부지만, 이게 꿈인지 생신지, 꿈이면 부디 깨지 말길!



어제와 그제밤, 아들이 숙소로 돌아간 후 잠시 혼자 지하철 역내에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며 '드디어 내 가정의 거친 쓰나미가, 맹렬한 불길이 잡혔구나.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하는 미숙하고 위태로운, 부모같지도 않은 부모 울타리를 훌쩍 넘어, 15세에 집을 나가 세상 풍파를 온몸으로 겪으며 오롯이 제 길을 간 두 아들이 이제는 나 같은 엄마도 엄마라고 찾아와 주니... 20년 만에 내 품으로 다시 돌아와 주니... 15세까지 밥 해 주고 도시락 싸준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두 자식을 공짜로 키웠으니, 이제라도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 '값 치름'이 곧 제게는 글을 쓰는 것이지요. 생명을 살리는 글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두 아들의 생명에 소홀했던 만큼 저는 이제 제가 접하는 모든 생명을 글로 보듬고 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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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영식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지만, 제 경우는 되로 잘못했는데 갚기는 말로 갚는 형국입니다.^^ 두 명한테 잘못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그 죄값을 치러야 하니까요. 엄밀히는 세 명이겠지요. 전남편을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사랑하지 못했으니.



관동대학살 6661명의 희생자와, 인성교재 집필의 대상인 청소년들과, 조력자살을 기다리는 절망어린 사람들과, 묻지마 사랑 5인방을 가슴에 꼭 품고 갑니다. 내 가족 세 명을 꼭 끌어안듯이.



제 시계는 지난 9월 2일로 되풀이 돌아갑니다. 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를 쓰면서 저는 많이 웁니다. 이 작은 방에 6661명의 원혼들을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꿇어앉혀 목이 잘리고, 쇠갈고리에 머리가 찍힌 채 질질 끌려 다니다 죽어가고, 여자의 성기에 죽창이 꽂히고, 임부의 뱃속에서 태아를 꺼내 반으로 가르는 야만...



일본인들은 살인을 즐겼던 것입니다. 조선인을 죽이는 것은 즐거운 놀이이자 대지진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자극적 게임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숫자가 무려 7천명을 육박합니다.



잔인한 장면의 영화도 보지 못하는 제가 이렇게 직접 묘사를 해봅니다. 제 마음의 무게를 여러분들과 나눠지고 싶어서지요.



아들이 서울에 있으니 제가 마음이 들떠서 오늘은 이만 마치고, 내일부터는 다시 동행기에 집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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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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