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영혼의 맛집 864
어제 "죽은 자 젯밥만 챙기지 말고 산 자도 밥을 달라."는 댓글을 받았습니다. 제가 관동대학살 희생자에 대한 글만 쓰고 있으니 예미녀 밥상이 그립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아, 새로 모신 독자님들, 예미녀가 뭐냐고요? '예수에 미친 여자'의 줄임말입니다. 누가 예수에 미쳤냐고요? 제가요!
에초 5박 6일 일정이라 5박 6일이면 동행기를 마칠 줄 알았는데, 아직 첫날 일정의 절반도 못 나갔네요. 여러분들께서 제게 자꾸 관련 자료를 보내 주시고 유의미한 피드백을 주시니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져 아예 책 한 권 분량으로 쓰기로 했지요. 여튼 올해까지 관동대학살 5박 6일 일정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제가 또 씨알재단 사업의 한 귀퉁이를 본격적으로 맞들게 되어 저의 아침글 횟수를 주 3회 정도로 줄여야할 판이라 생각이 많아지네요. 제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맡은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과연 이 모든 일(결국은 글쓰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요즘은 이 말씀이 자주 떠오릅니다. 내게 일을 맡기신 이도 그분이요, 그 일을 완수케 하시는 이도 그분이라는 의미 그 이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상황을 수용하며 당신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나는 자족하겠다는 순종의 의미로.
이 말씀을 자칫 "하나님께 기도하면 뭐든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오해하실까 싶네요. 이뤄지긴 이뤄지죠. 단, 뭘 기도하냐는 게 포인트죠.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려면 '그분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해야 하는 거지요.
가령 제가 주변의 어떤 능력있는 유부남을 내 것으로 삼고 싶다거나, 명예와 부를 위해 유명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그런 따위의 일을 그 분의 능력에 호소하며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를 읊조릴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이 말을 하던 바울의 때는 굶주리고 비참한 처지, 죽음조차 수용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제 처지를 바울에 견준다는 건 언어도단이지만, 제 깜냥으로는 지난 10년 간이 어떤 처지에서도 견뎌내는 일체의 비결을 훈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물론 당시는 죽을 맛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렇다는 뜻입니다.
물질적으로 궁핍했고 정서적으로 불안했으며 심리적으로 공황상태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내가 한 일,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회한으로 방바닥을 설설 기며 몸부림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러다 돌거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한계 상황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제는 하나님 일을 한다고 설쳐대고 있네요.^^
지금 극한의 어려움에 맞닥뜨린 독자들이 몇 분 계십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훈련 기간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일이 풀려나갈 것입니다. 지금의 저처럼요. 단, 그 일이 나와 내 가족만의 안위나 이기적 목적은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