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19
국회의사당을 찾아가는 길, 그만 엉뚱한 역에서 내렸습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큰 나라라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내려서 출구까지가 엄청나게 멀었던 거죠.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내려 출구까지 한참을 걸어 지상으로 올라와 엉뚱한 방향으로 얼마간 가다가
"여기가 아닌가 벼~~"
하고 돌아서서 지하철을 새로 타러갑니다. 표를 또다시 다 새로 사고, 국영철도인지 민영노선인지에 따라 중간에 또 표를 사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못 든 길에서 동경스카이트리 타워를 바로 눈 앞에서 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관광객처럼 일제히 작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라 국회의사당 가는 길에 타워를 잠깐 보고 가는 코스가 된 것이죠.
삶의 길도 그렇지 않을까요?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에서 다른 것을 보는 뜻밖의 행운을 누리는 중은 아닐까요? 잘못 든 길이라고 잘못 간 건 아니라는 거죠.
사람에 따라서는 잘못 들어선 것 같은 길이 오히려 옳은 길인 경우가 왜 없을까요? 저는 지금 홀로 가고 있는 이 길이 원래 제가 걸어야 할 길이었다는 확신이 점점 명확히 듭니다. 비록 외롭고 고단하지만 내 삶을 완주하는 길은 이 길이라는 것을. 마치 회심 후의 바울처럼.
맨날 가정회복을 간구한다더니, 혼자 사는 게 맞는 것 같다는 건 또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요?
제게 가정회복은 '관계회복'을 의미합니다. 이혼했다고 서로 원수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또한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해서 부부로 다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목숨과도 같은 자식을 공유하고 있는 '기막힌 관계'인데 왜 원수가 되어야 하냔 말이죠. 그 기막힌 관계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눈물의 기도로 간구하는 거고요.
말이 옆으로 샜습니다. 잘못 든 길처럼.^^
우여곡절 끝에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서 국회의사당 역에 내렸지만 이미 어두워진 사위(四圍)에는 온통 적막이 흐릅니다.
"여기가 아닌가 벼~~"하는 불안이 다시 피어오릅니다. 일본의 양심이 모두 일어나 관동대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거사'를 치르는 밤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닌 분위기.
일행은 밀정처럼 어둠 속을 더듬으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목소리조차 지레 낮추며. 정체 모를 그 적막이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그렇게 또 10여 분을 걷는 사이 방금 본 동경타워처럼 국회의사당 건물이 신기루처럼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아, 제대로 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비장함이 어립니다. 동시에 위압감도 느낍니다.
여름밤의 열기를 차갑게 반사하는 백색의 의사당, 관동대학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우리의 열정조차 차고 흰 비웃음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서늘한 오만함이 서린 듯 합니다.
그런데 시위는 도대체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합류할 시위대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함성도 도무지 들리질 않으니.
"오늘이 아닌가 벼~~"
여의도 어느 곳에서 국회 돔이 보였다고 해서 국회가 코 앞에 있는 게 아니듯, 우리 일행이 있는 지점에서 일본 국회의사당은 여전히 멀리 있는 걸까요?
내일 계속 걸어가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