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20
국회의사당이 보이기 시작하고도 의사당 건물을 왼편으로 두고 한참을 끼고 돌아 걷습니다.
그러다 낌새도 느낄 새 없이 갑자기, 느닷없이 시위대를 만납니다. 국회 정문앞이었던 건데요,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던 우리로선 마치 재크와 콩나무처럼 불현듯 딴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재크는 위로 올라갔고 우리는 옆으로 한없이 걸었던 차이만 있을 뿐.
"칸토대학살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조선인 중국인 학살 100년"이라고 쓴 피켓과 프랭카드를 들고, 걸고 일본 정부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눈물이 굅니다.
의아한 건 주변이 왜 그렇게 캄캄했냐는 거죠. 마치 두메산골처럼. 도쿄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리는 없을 텐데, 국회 정문 앞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라서 모인 사람 각자가 지닌 스마트폰이나 촛불 등의 빛이나마 없었으면 옆 사람 얼굴 알아보기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3일 간의 6661명의 대학살의 그 밤, 100년 전의 그 어두움이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일까요?
우리 일행도 운집한 500여명을 배경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며 합류합니다.
사진을 확대해 보시면 함인숙 목사님, 저,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이 중앙에 섰고요,
맨 오른쪽에 함인숙 목사님, 저, 목사님 뒤로 백미정 참여연대 활동가가 보이네요.
멀리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저 혼자 잠깐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그 밤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다음주에 드리기로 할게요.
*월, 화, 수요일은 관동대학살 동행기를, 목요일은 예미녀의 예수 동행기를, 금요일에는 인문적 시선의 글로 영혼의 맛집 메뉴를 잠정적으로 바꿔 걸겠습니다. 관동대학살 동행기를 마칠 때까지만요. 신아연의 맛집을 변함없이 찾아주시는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