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18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지난 주 금요일, 붕어빵 아들이 호주로 돌아간 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좀 헤맸습니다. 꿈인 것만 같았던 만남이 꿈이 아니었으니 헤어짐도 꿈이 아니었던 거지요.
오래 전, 제가 한국에 다니러 왔다 호주로 돌아갈 때면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서 배웅하시던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제는 제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들과 저는 뜨거운 포옹으로 작별했습니다. 만났을 때 포옹보다 헤어질 때 포옹에 아들의 팔에 더 강한 힘이 실렸던 걸 기쁘게 기억합니다.
몸의 기억은 강렬한 것이지요. 백 마디 말보다 한 마디 몸의 언어가 아들과 저 사이에 생생하게 남았습니다. 이제는 이 언어, 이 기억을 가지고 또다시 혼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홍대앞에서 붕어빵 아들과 붕어빵도 사먹었는데 아들과 제가 진짜 닮아 제가 다 깜짝놀랐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으면 거울을 들여다 보면 될테지요.^^
아들은 호주로 갔고, 저는 다시 일본으로 갑니다.
씨알재단 이창희 국장은 아라카와 강변 공원에서 17개 넋전 박스를 지키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국회의사당으로 향합니다.
그날 날씨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정말이지 죽음이었습니다.
33~35도 선의 기온과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습도로 온 몸이 땀에 저려지고, 그 땀이 강바람에 꾸덕꾸덕 마르고, 다시 끈적끈적 땀 세례를 받는, 각자 자기 체력의 한계를 체험하는 날이었다고 할까요.
편의점에서 사온 차가운 물을 바로 마시지 않고 일행의 목덜미에 번갈아 가며 대어주시던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의 자상한 배려가 떠오르네요. 우리의 체온으로 물은 이내 미지근해졌기에 이사장님은 결국 더운물을 마셔야했지요.
아라카와 강변의 야히로역에서 국회의사당역이 얼마나 먼지, 국회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 턱이 없는 저는 이번에도 인솔자의 꽁무니만 따라갑니다. 함인숙 목사님과 김원호 이사장님이 인솔합니다.
김이사장님은 현업 때 업무차 일본을 자주 오가셨기에 정기승차권을 갖고 계시지만, 일행을 위해 매번 표를 사 주셔야 했는데요, 우리처럼 한 번만 표를 사면 환승을 통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바로 도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은 국유와 민자 노선이 따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 목적지까지 아래와 같은 열차표를 5박 6일 동안 몇 번이나 사야했는지 몰라요. '표'라기 보다 '표딱지'라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지하철 역사 내에도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소방에 만전을 기하자는 포스터가 게시되어 있네요. 그러나 관동대학살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지하철 내에도 같은 게시물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탔던 일본 지하철 내부입니다. 우울하고 어두운 국민 정서를 보완하려는 걸까요? 지하철이나 열차 몸체 색도 그렇고 특히 내부는 밝고 알록달록한 것이 마치 이동 유치원 같았습니다. 또한 좌석의 색상과 재질이 고급스럽고 세련되었고요.
제가 오늘 오전에 강남자생한방병원 치료를 받으러 가야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앉아서 글만 쓰니 몸이 또 안 좋아졌습니다.
내일 계속할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