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글있다 6
어떻게 다시 시드니의 동포신문사와 연결이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그쪽에서 연락이 온 듯 하다. 다시 신문사에서 일을 할 수는 없으니 대신 칼럼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나로선 비어있는 내면을 메우고 신문사 측에선 비어있는 지면을 메우는 그야말로 윈윈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듯 마침내 살 길이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 그대로 뛸 듯이 기뻤다.
글 쓰는 간격도 내 맘대로 하라고 해서 일상생활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을 쓰기로 했다가 어느 정도 탄력이 붙자 2주에 한 번 꼴로 게재일수를 늘렸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20대 첫 직장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쪽으로(내근 선택) 방향을 돌렸다면 30대의 타운스빌 생활은 즐기는 글 쓰기의 길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든, 즐거워하든 그 계기가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취재하고 사람 만나는 것이 죽을 맛이던 경험이 있었기에 내근으로 전환이 되었고, 타운스빌 생활이라는, 외적으로 고립되고 내적으로 공허했던 불안과 불만스러운 상황이 있었기에 글이라는 세계에 접속이 가능했던 것이지 않냔 말이다. 만약 시드니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신문사를 계속 다니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소모적인 기사만 쓰게 되었을 것이다. 두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해 가며 기자생활을 하면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기는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분주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니 삭막한 감옥살이 같았던 타운스빌에서의 10년의 시간이 없었다면 글쟁이로서의 나의 소질이 개발될 계기도 없었을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그렇게 타운스빌 생활 10년 동안 쓴 글이 책으로 2권이 되었고, 차츰차츰 외부에 알려지면서 한국의 글쟁이들과도 연결이 되어 함께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글 쓰는 일이 대단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글, 글 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재능, 소질, 능력이 거기에 있다면 그것이 표현되고 드러날 수 있는 계기를 놓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포착해 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고난이 기회라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만, 내게는 그 이상의 어떤 것, 소명이라고 할까, 본성이라고 할까, 보다 근원적인 어떤 것이 자극된 느낌에서 오는 내밀한 기쁨과 희열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뭐가 또 그렇게 죽을 맛이었나 싶다. 뭐가 그렇게 감옥살이였냔 말이지. 법륜 스님이 늘 하시는 말씀처럼 다람쥐도 살고, 토끼도 사는 데 사람이 왜 못 살까. 다람쥐가 다른 다람쥐보다 나무 타는 재주가 못하다고 자살을 하거나, 매미가 옆의 매미보다 목청이 덜 트였다고 '에잇, 이럴 바엔 죽어버리자'고 하더냐는 말씀말이다. 성실하게 돈 벌어다 주는 남편있겠다, 네 식구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집 있겠다, 토끼같은 애들이 둘이나 있겠다,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 부족한 것이 뭐가 있어서 밤낮 '자아의 곡성'에 스스로 시달리고 자신을 들볶아 대야 했느냔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또다른 업을 짓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집착과 애착이 심할수록 업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는 나는 늘 지혜가 부족한 인간인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