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23
어떤 노처녀가 내게 연애 잘 하는 법을 물었다. 연애에서 결혼까지 가는 도상이 너무나 험난하여 이제는 아예 길을 잃은 것 같다며 울상이다. 당사자는 심각한데 나는 웃음이 나왔다. 화투나 카드 패를 집어들 듯 연애, 사랑, 결혼 그것처럼 우연과 운이 작용하는 일이 또 있을까 싶고, 내가 그걸 안다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겠나 싶어서.
글쟁이인 나한테 물었으니 나답게 대답해 보자. 연애를 잘 하고 싶으면 어휘력을 늘리고 평범한 일상을 맛깔스럽게 묘사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말 잘하는 사람이 연애도 잘 하는 법, 천일 하고도 하룻밤을 꼬박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천일야화』의 영리한 여인 셰헤라자데처럼 재미난 이야기가 샘솟는 파트너에게 싫증을 낼 사람은 없다. 장안의 여자들이 왕의 하룻밤 노리개가 된 후 다음날 아침 죽임을 당하지만 밤마다 이야기 주머니를 끌렀던 그녀만은 왕의 마음을 사로잡고 왕비가 되었듯이. 매일 밤 목숨이 걸린 셰헤라자데의 피를 말리는 '아라비안나이트' 덕분에 우리까지 지금, 그 갈래에서 나온 레퍼토리 중 하나인 「알라딘」을 영화로 즐기게 되었고.
사람들은 자기와 엇비슷한 수준의 언어능력을 가진 친구나 섹스 파트너와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최초의 몇 마디로 서로의 관심을 끌고, 존경심과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언어의 친화성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 시점에서 이미 판단이 나 있는 상태다. 서로의 짝으로 하루에 두 시간 씩, 약 3개월간 대화할 수 있으면 그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시간을 백 만 단어가 채우게 되는데, 백 만 단어의 장벽을 넘어서야 그 연애가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많은 관계가 결딴난다. 성격이 충돌하고, 언쟁은 해결되지 않고, 농담도 먹히지 않고, 관계가 시들해진다. -제프리 밀러 『연애』 에서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