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23
30년 전통의 아카사카 맛집, 한식당 '옛날집'에서 한껏 먹고 도시락을 두 개 싸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차, 또다시 그만 엉뚱한 노선의 지하철을 탔습니다. 지치고 고단한 몸에 밥과 한 잔 술이 들어가니 모두들 정신이 혼미해진 탓입니다.
도시락 주인은 아시죠? 하나는 아라카와 강변에서 넋전을 지키고 있는 이창희 국장을 위해, 또 하나는 숙소에서 내일 위령제 준비를 하고 있는 양혜경 넋전춤 전수자를 위해.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각, 두 분 얼마나 배가 고플까요? 점심식사 후 12시간을 굶었다는 거 아닙니까.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안됐습니다. 한시바삐 도시락을 전하려면 달려가도 시원찮을 판에 또 그만 지하철을 잘못 탔으니... 게다가 바꿔 타려던 지하철이 끊겨 버렸으니...
숙소가 있는 야히로역으로 가는 막차를 놓친 거지요. 일본사람들은 우리처럼 밤에 안 돌아다니는지 막차가 떠난 황량한 역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도 우리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택시를 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요. 이렇게 해서 일본에서 택시를 처음 타보게 됐네요.
추모제를 주관한 씨알재단 일행은 고생을 사서하기로 한 면이 있습니다. 그토록 처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들을 추모한다면서 우리는 편안하게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것이 죄스러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택시 대신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넓고 안락한 숙소 대신 불편하지만 작은 방에서 끼어자고, 밥을 제 시간에 못 먹고 이랬던 거지요.
거기에 폭염까지 우리의 고생에 배경이 되어주었죠. 어떻게 그렇게 더울 수가 있는지. 일본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일본열도가 온통 끓었다"는 표현을 문자적으로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랬기에 지금 이렇게 할 말, 이야기거리가 풍성한 거 아닐까요?
인생도 그렇겠지요. 인생의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은 대체로 편하게 산 사람일 것입니다. 고생과 모험, 도전으로 가득찬 인생일수록 마지막 페이지를 신명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고생을 좀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할 말이 많은 엔딩이 되고 싶으니까요.
일행을 나눠 태운 택시 두 대가 숙소 앞과 아라카와 강변으로 각각 향합니다. 한 팀은 이국장에게 도시락을 먹이고 밤샘을 독려하기 위해. 또 한 팀은 숙소에서 기다리는 양혜경 씨에게 도시락을 전하기 위해.
문제는 제게서 터졌습니다. 양혜경씨가 우리 옆 방에 묵는 줄 알고 문을 두드렸는데 기척이 없길래 기다리다 지쳐서 자나보다 하고 도시락을 못 준 건데요, 알고보니 그 방이 아니었던 거지요.
그것도 모르고 저는 양혜경 씨가 곤히 잠들었나 보다, 그러니 깨우지 말자며 도시락을 제 방 냉장고에 고이 넣어뒀던 거지요. 고소한 불고기와 맛있게 익어가던 오이소박이 냄새가 지금도 나는 것 같네요.
자정무렵까지 도시락을 기다리고 있었을 양혜경 씨, 정말 미안합니다. 꼬박 굶고 다음날 무슨 기운으로 춤을 출 수 있었는지. 저와 동갑이니 우리 나이에는 밥심으로 사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데 말이죠.
* 제가 오늘 밤부터 내일 오전까지 양평에서 관동추모제 팀과 함께 하는 세미나 및 뒤풀이에 참석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글을 쓰지 못합니다. 금요일에 금요별식으로 다시 만날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