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28
9월 3일, 이른 아침부터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과 김양호 피디님은 두 분의 이름만큼이나 나란히 다시 일본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시고, 나머지는 공원에서 넋전 매다는 작업을 합니다.
국회를 왜 또 가셨냐고요? 간밤의 과열된 시위 열기로 인해 우리측 성명서를 발표할 기회가 없었기에 다음날 다시 가서 낭독을 하신 거지요. 전날 많이 고단하셨으니 택시를 타고 가실 일이지 또 지하철을 몇 번 씩 갈아타고 다녀오셨다네요.
우리는 이렇게 한마음이었습니다. 억울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자리인만큼 우리도 작은 고생 정도는 마다하지 않았던 거지요.
여러분, 제가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측의 추모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텐데요, 미리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저도 열린 마음으로, 여러분도 열린 마음으로 귀기울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동안 몇몇 분들이 이런 방식의 추모제는 옳지 않다, 더구나 목사가 주축이 되어 6661명의 혼령을 상징하는 종이 인형(넋전)을 만들어 걸고 애곡하는 형태는 기독교인으로서 비난 받을 일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신자는 제가 100년 전 망자들의 혼백에 씌어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다며 어서 주님께 돌아오길 눈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더 이상 제 글을 읽지 않겠다며 발송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귀신에 씌어 두 달 넘도록 추모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 글을 쓴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넋전이 혐오스러운가요?
저도 크리스천입니다만, 추모제 참석자 거의 다가 가톨릭과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또한 돌아가신 분들 중에 기독교인이나 천주교 신자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추모제를 성당 식으로 혹은 교회 식으로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요?
왜냐하면 당시는 유교 전통을 따라 상례를 올리던 때니까요. 돌아가신 분들이 본인을 위해 어떤 장례가 치러지길 바라셨을까 말이죠. 100년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된 터에 누구를 위한 추모제인가를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아닌데, 기독교 식으로 추도식을 했다면 관동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어떻게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이번 추모제는 전통상례의 재현이란 공연적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 자체로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어디 가서 이런 구경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을만큼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무형 문화재인 공주 상여소리 팀이 자비를 들여 참여, 엄숙하게 상례를 주관했고, 양혜경 넋전춤 전수자의 애절한 몸짓은 원혼을 달래기에 아낌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인이기 전에,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같은 민족이라는 배냇 정서로, 그것도 어렵다면 전통상례 퍼포먼스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