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27
올해가 관동대학살 100주기라 한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9월 2일에 시작된 5박 6일 추모제가 주변에서 자꾸만 관련 이야기를 물고 들어오는 바람에 저의 동행기는 아무래도 해를 넘길 것 같습니다. 자료가 점점 더 쌓여가고 있어요. 저한테 다 몰아주시는 바람에.
추모제 동행기를 오마이뉴스에 동시 연재하고 있는데 회당 4천~6천 명이 구독을 합니다. 관심이 꽤 높은 편이죠. 씨알재단의 다음 행보를 다지는 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다음 행보가 뭐냐고요? 아주 중요한 행보죠. 그건 또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어린 시절, 솜사탕 만드는 아저씨 같아요, 제가 꼭. 드럼통 한 마디 잘라낸 깊이와 크기의 둥근 통에 나무젓가락 한짝을 빙빙 돌리면 안개처럼 설탕이 엉겨가며 솜사탕이 점점 부풀어 오르잖아요. 그처럼 '1923 관동' 이야기도 갈수록 부피가 커집니다.
관동 솜사탕 아줌마네요. 제가. ^^
자, 솜사탕 만들기, 계속 해보죠.
이창희 씨알재단 사무국장
아라카와 강변 공원에서 9월 2일 오후 6시~ 다음날까지, 꼬박 10시간을 넋전과 함께 뜬눈으로 지샌 후 새벽 4시에 함인숙 목사와 교대를 하고, 다만 두어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러 숙소로 돌아온 이창희 씨알재단 사무국장.
이번에는 이 국장님이 간밤의 저처럼(넋전춤을 출 양혜경 씨에게 도시락을 가져다 주려다 엉뚱한 방을 노크한 일, 그래서 양 선생을 굶긴 일) 방을 잘못 찾아 제가 자고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자고 있었다기 보다 자정 무렵 몸을 뉘였을 뿐 밤새 뒤채다 4시 정도에 설핏 선잠이 든 것 같았는데 그나마 국장님의 노크 소리에 깼던 거죠. 문 옆에 바싹 붙어 누워있던 참여연대 소속 백미정 선생이 더 놀랐을 것 같아요. ^^
이후 제대로 남자 방을 찾아 일행의 발치, 화장실 앞에서 한 두 시간 새우잠을 잤는지 그조차 못했는지...
아무튼 9월 3일 추모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행사는 10시지만 6661 넋전을 공원에 거는 작업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식사는 따로 준비 된 게 없고 각자 알아서 먹든지 굶든지 해야 하는 상황.
다행인 것은 숙소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어 물과 음식을 살 수 있었다는 점. 더 다행인 것은 일본 편의점의 김밥, 초밥 등 도시락이 모두 먹을만 했다는 점. 그렇게 각자 자기 요기거리를 사면서 두, 세 사람 분량 정도를 더 사서 함께 아침을 해결했던 건데, 서로 위하는 마음으로 인해 공원에 모인 사람들 모두 부족함없이 아침을 먹고도 오히려 음식이 남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저 또한 음식은 넉넉히 사서 함께 나눴습니다만, 물병은 꼬불쳐 뒀습니다. 날씨가 아침부터 옥수수 찜통 속 같았으니 종일 얼마나 갈증이 날지 지레 겁이 났던 거지요. 그랬는데 점심 때 음료도 음식도 넉넉히 제공된 걸 보면서 아침에 물병을 감춘 게 부끄러웠습니다.
앗, 저 사람이 또 나와있네요. 일본의 1인 평화주의자 다카시 씨. 키가 장대처럼 커서 나무에 거는 넋전은 저분이 도와주셨죠. 얼마 전엔 부산을 다녀갔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