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참혹한 이야기인지 모르나 사람이란 세상에서 최후의 불행이라 할 수 있는 홀아비가 되어 보아야 신앙을 알기 시작한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할 때는 바로 알기 어렵다. 홀아비가 된 뒤에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은 못할 말이지만 어떤 사람은 장가를 갔다가 아내가 죽자 아내에게 따라갈 수 없으니 신부가 되었다.
다석어록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망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재밌고 진솔한 말씀이죠. ^^
살면서 큰 불행이 홀아비가 되는 것이라니, 제 독자들 중에 홀아비가 여러 분 계시니 듣기 거북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석 선생이 남자라서 홀아비가 가장 불행하다고 하셨을 뿐, 홀어미의 불행도 홀아비 못지 않습니다.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홀아비, 홀어미'의 사전적 정의에는 이혼을 하여 혼자된 경우는 해당되지 않지만, 엎어 치나 메치나 혼자라는 것은 마찬가지니 다석 말씀을 확대 적용한다면 저 역시 홀어미가 된 뒤에 신앙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제 전남편은 홀아비가 되었음에도 신앙이 없으니 딱한 일입니다. '불행한 홀아비'가 아니란 뜻이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부족함 없이 잘 산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좋은 직장에, 좋은 집에, 좋은 자식들에. 좋은 여자만 새로 들이면 되겠습니다. ㅎㅎ
그런데 그 '부족함 없음'이 오히려 독소입니다. 저처럼 와장창 깨져나가야 하나님을 만나니까요.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세상적으로 부족하네, 만족하네 하는 자체가 별 의미없어지니까요.
신앙을 가진 후 지난 3년 간,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모두 응답해 주셨는데, 전남편을 만나주십사하는 기도에는 아직 답을 안 하고 계십니다. 기결, 미결, 보류 가운데 미결인지, 보류인지 알 수 없어 안타까운 가운데 부디 '기결' 도장이 찍히길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불행을 통해 갖게 되는 신앙, 인간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가령 최고의 의료진과 완벽한 설비를 갖춘 병원이 동네에 들어섰다 합시다. 더구나 이 병원은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렇다고 한들 아프지도 않은데 구경 삼아 병원을 가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제 집에서도 20분 거리에 서울대 보라매 병원이 있지만, 보라매 공원에 산책을 갈 망정, 공원 바로 옆 병원엘 일 삼아 왜 가겠습니까.
몸이 아파야 병원을 가듯이 마음이 아파야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문제는 몸이 아파도 병원을 안 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아픈데도 신앙을 안 갖는 사람입니다. 더 문제는 몸이 아픈 줄도 몰라서 병원을 안 가는 사람처럼, 자기 마음이 아픈 줄을 몰라서 신앙을 안 갖는 사람입니다.
신앙을 가져보니 알겠습니다. 세상살이에 찌든 독이 빠져나가는, '마음의 디톡스'로 인해 세상에 짓눌리거나 휘둘리지 않게 된다는 것을. 세상을 딛고 서게 된다는 것을.
신앙이란, 불행이 가져다 주는 더할 나위없는 선물입니다. 아파야 치유받는 원리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요한복음 16장 33절
하재열 작가의 '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