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우리는 뭔가를 했다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36

by 신아연


오래 된 일도 아닌데


깡그리 잊어버린 일이 있다.


먼 곳의 일도 아닌데


아득히 제쳐 놓은 일이 있다.


남의 일도 아닌데


누구도 생각 않는 일이 있다.


그러나 언제인가 그런 일은


새록새록 숨어서 숨을 쉬는 법이다.


때만 되면 억세게 튕겨져 나와


만갈래 비사(祕事)를 외치게 한다.


의리가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머리가 나빠서


까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 좋아서


없는 걸로 해두었던 것은 아니다.


새록새록 그것은


우리 속에서 숨쉬고 있었다.


잊고 싶어도, 까먹고 싶어도


아예 없었던 걸로 해두고 싶어도


그것은 이제 너무도 억세어서


고스란히 잠재울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



간토대학살을 다룬 김의경의 희곡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중에서



지난 금요일 관동대학살 다큐 영화 <1923> 시사회를 다녀온 후 위의 시를 다시 읽어봅니다. 시사회 다음날 열린 <간토, 100년의 침묵> 한일연합합창제에서 소개된 시입니다. 이제 시어를 바꾸어 읊어봅니다.



잊고 싶어도, 까먹고 싶어도


그것은 너무나 억세어서


잠재울 수가 없다.


그래서 분명히 우리는 뭔가를 했다.


분명히 우리는 뭔가를 했다.


뭔가를 했다. 뭔가를 했다.



영화 <1923>은 속된 말로 '이 잡듯 뒤진' 100년의 진실이었습니다. 비사(祕事)를 모조리 담아냈습니다. 이제 "분명히 우리는 뭔가를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간토 100년의 침묵을 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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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후 함께 만든 사람들을 소개하는 김태영 감독(가운데)





영화에는 지난 9월 3일, 씨알재단 주관으로 동경 아라카와 강변에서 100년 만에 열린 추도제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희생자의 유족 및 생존자와 목격자의 증언, 은폐와 조작을 증명하는 각종 문서 등도 영상에 담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것까지 찾아냈을까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집요한 추적이었습니다. 없었던 일로 덮어둘 수는 없었던 한일 양심들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잡듯 뒤졌다는 감상이 가장 컸던 것이죠. 관동대학살에 관한 진실 접근으로는 더 이상의 영화는 없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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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살 다큐 영화 <1923>을 만든 김태영 감독





영화는 내년 4월에 개봉합니다. 지난 번에 올린 예고편을 다시 올립니다. 잠깐이나마 함께 보시지요.



https://blog.naver.com/timetosapyo/22328423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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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34 / 100년 만에 만든 영화 <1923>

"저도 누군가의 페치카가 되어야겠어요." 어제 글에 이런 댓글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페치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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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현장 동경 아라카에서 넋전 추모제를 연 함인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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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곡 '귀향'을 부르고 있는 김현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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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를 읽고있는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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