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치면 오늘 배달사고를 낸 거네요. 글이 늦었습니다.
매일 아침 8시에 글이 온다고 '8시 땡'이란 제 별명도 무색하게 어제 밤늦게까지 큰아들과 대화를 하다가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났습니다.
다 큰 자식은 그저 가장 가까운 이웃사람 대하듯 하라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배웠으니...^^
두 아들과의 대화는 항상 기도로 임하고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먼 곳에 떨어져 있으니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완결합니다. 엄마는 늘 너희들에게 미안하고,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을 지지하고, 너희들을 공감하고,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장4절
제게는 뼈 아픈 성경말씀입니다. 노엽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못 살게 굴다가 15세에 둘다 가출하고 말았으니... 제 두 아들 이야기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두 아들을 생각할 때 가장 가슴을 때리는 말입니다. 예수님 만난 지금, 다시 아이들이 어릴 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련만.
제가 묻사(묻지마 사랑)니 무대(무리대금업)니 설쳐대는 것도 실상은 부모로서 상처 낸 두 아들에 대한 회개의 몸짓입니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이제와서 되돌려 사랑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다친 두 영혼에 대한 손해 배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향해 갚는 수밖에 없는 거지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식으로, 아이들한테 죄 짓고 다른 사람한테 죄 갚음한달지.
그러나 자식들에게 이 떳떳지 못한 마음이 저를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란 마음을 갖게 합니다. 나는 내 자식도 제대로 못 키운 사람인데 무슨 내세울 게 있는가 하고.
그 약점이, 약함이 주님을 항상 붙잡게 합니다. 주님 없이 살 수 없게 합니다.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것이 도리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 후서 12장 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