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잊힌 존재들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40

by 신아연


9월 3일 추모제를 마친 후 일본인 몇 명을 가까이서 만났습니다. 6661명 넋전의 화장을 위해 함께 1박을 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눴던 것이죠. 넋전 화장에 일본 사람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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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어떤 젊은이는 관동대학살의 진실 여부를 잘 몰랐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믿기지 않았고 매스컴에서 접하는 정부 발언, 즉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니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긴가민가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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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무라 사건을 다룬 영화 <1923년 9월>의 모리 다쓰야 감독의 "조선인을 학살한 일이 없고, 당시 조선인들이 진짜 우물에 독을 탔다고 믿는 일본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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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가해국이니 그렇다치고 우리를 돌아봅니다. 저 또한 할 말이 없는 사람이긴 마찬가지지만.



관동대학살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자세히 알려고 한 적도, 알고 싶은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인연이 닿으려고 하니 아주 우습게 닿아 지금은 마치 관동대학살 취재 전문기자라도 되는 양 점점 더 영역을 넓혀가고 있네요. 주변에서 자꾸만 관련 글감을 가져다 주시니까요. 호주댁이 관동댁이 되어간다니까요.



전에 말씀드린대로 저는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의 글쓰기 선생입니다. 내년이면 햇수로 5년 째입니다. 8월 중순 경 어느 날, 김이사장님께서 "씨알재단 주관으로 9월 3일에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를 일본에서 하게 되었다"며 따라서 그 주는 수업을 할 수 없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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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관동의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느닷없이, 제 자신도 모르게, 불현듯 저도 데리고 가 달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던 거죠. 지금 생각해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소위 '운명'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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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말을 왜 하냐면 어떤 일에는 그 일이 들추어질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내게 다가왔을 때 외면하거나 남일이라고 여기지 말자는 겁니다. 제가 단 3일 간의 추모제를 3달 넘게 글로 풀고 있는 것도, 독자 여러분들이 저와 함께 그 여정을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인연이 닿으려니 그런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100년 전 일이 뭐가 그리 오래된 일입니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화 <1923년 9월> 후쿠다무라 사건 개봉 직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던 모리 다쓰야 감독의 말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제가 관동대학살에 관한 글을 계속 쓰게 하는 이유와, 1923년의 희생자들을 2023년에 되살려내려는 간절함에 닿아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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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러 배급사와 접촉하고 있지만 개봉이 결정된 곳은 아직 없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레젠테이션했는데 한국인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다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잘 알지도 못했고, 얘기해도 무관심이었다. 지인에게서 ‘한국인 사이에는 어차피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은 반(半) 쪽발이(일본인을 비하하는 표현)라는 인식이 없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 충격이었다. 수천명에 이르는 조선인 학살 피해자들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잊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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