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노는 여자, 밤에는 쓰는 여자

내 안에 글있다 8

by 신아연

세상에서 상바보 중 하나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들은 어떻게 할까, 이렇게 하면 남들이 알아줄까,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등등 내가 아닌 바깥이 기준이 되어 사는 사람이다.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잠자리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 죽음의 침상에 누워있는 거라면 남의 시선에 맞추지 못해 전전긍긍해 온 삶이 과연 내 삶이었을까 하는 회한이 밀려들 것 같았다. 세상 마지막 날을 맞는 순간에 나는 내 인생을 살지 않고 남의 기준에 맞춘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살았다는 각성이 온다면, 그처럼 황당하고 황망한 시추에이션이 있겠냔 말이다. 이게 무슨 내 인생이었냐는 거지. 아마도 그 순간 지옥의 문턱을 넘는 느낌일 것이다.


나는 호주 북부도시 타운스빌에서 남편 직장의 주재원 부인들과 사택생활과 유사한 집단생활을 하면서 그 집단문화에 동화되기 위해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살았던 느낌이다. 이유는 지난 번에도 말했듯이 남편의 순탄한 직장생활을 위해, 아이들이 따돌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한국 친구들이라곤 고려아연 주재원 가정 자녀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자들 관계에서 처신을 조심하다못해 마치 다른 인격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가사에 나오는 여자처럼, 밤낮의 가면을 바꿔 쓰기로 하고, 일주일에 두 번, 방송을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낮에는 전과 다름없이 잘 노는 여자로, 밤에는 글을 쓰는 여자로 변신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정 건사하고 나머지 시간엔 나하고 싶은 것 한다고 누가 뭐랄까 싶지만 그때는 그게 안되었다는 거지. 그러니 밤에 안 자고 글을 쓰기가 어디 쉬웠겠나.


호주 통신원으로서 한국의 각 방송사를 '주름잡고', 신문, 잡지 등에서 호주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기고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지만(그 정도는 아니라는 거, 약간 뻥이라는 거, 내 글을 죽 읽어온 분들이라면 이젠 아시겠지? 이젠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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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재원 부인들 사이에서는 '신아연'이 아닌 '진원엄마'로만 인식되기를 애썼다는 건 겸손이 지나쳐 남 눈치를 본 전형적인 나의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튈 수 밖에 없었으니, 낭중지추-오늘 자랑이 지나치다- 라는 말처럼 나의 끼와 재주를 숨길 수가 없었고, 한국 매체와의 활발한 활동이 인연이 되어 외교부에서 주관하는 재외동포언론인 모임에 '기라성' 같은 시드니 동포 언론인들을 제치고 척박한 오지 출신인 내가 재호주 동포 언론인을 대표하여 서울로 초대를 받아 가는 '가문의 영광'을 누리기에 이르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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