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 이전에 나는 한 마리의 개였다

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24

by 신아연

지인 중에 유난히 니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50살 쯤 된 것으로 안다. 심한 갈등을 겪은 사람일수록 50언저리에서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자각이 강하게 오는 듯싶다. 돌이켜 보니 나도 50에 이혼을 감행했다. 물론 구체적인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고,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본래의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무의식을 뚫고 올라오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보면 중년은 되어야 비로소 엄두를 내게 되는 성 싶은데 그때 우리는 니체를 떠올리게 된다.


서양에 니체가 있다면 동양에는 장자가 있다. 좀 더 가까이에는 명나라의 이탁오가 있다. 니체가 기독교에 질식했다면 이탁오는 유교에 질식한 사람이다. 문화권으로 본다면 우리에게는 니체보다 이탁오가 더 매력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세상에 오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윤리, 도덕, 관습, 문화, 체제, 종교 등 스스로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온갖 옷이 껴입혀 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고 살다 죽지만, 니체와 이탁오는 그 옷들이 견딜 수 없이 불편한 나머지 벗어 던지고자 생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특히 이탁오는 '50 노년'에 절정에 이르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중년이 아닌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현의 가르침을 읽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성현의 가르침이란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공자를 존경한다. 그렇지만 도대체 공자의 무엇이 존경할 만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것은 이른바 난쟁이가 저잣거리에서 구경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에 따라(실제로 보지도 못하고선) 함께 웃고 떠드는 꼴에 불과했다. 나는 나이 오십 이전에는 진실로 한 마리의 개일 뿐이었다. 앞에 있는 개가 자신의 형상을 보고 짖어대면 또한 그 소리에 따라 짖어대는 것과 다름없었다. 오호라! 나는 지금에 와서야 더 이상 다른 소리를 따라 짖지 않게 되었다. 옛날에는 난쟁이에 불과했던 내가 노년에 이르러 마침내 장인(키다리)으로 성장한 것이다.

- 이탁오 <속분서>, 성교소인 / 한정주 『글쓰기 동서대전』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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