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영혼맛집 900 / 교토 여행기 8
이번 달에 저는 씨알재단 요청으로 '관동(간토)대학살'에 관한 책을 한 권 써내야 합니다.
지난 해 9월 2~7일, 5박 6일간을 도쿄에 머물며 6661명 희생자들의 100주기 추모제를 치르고 난 후 제 나름의 동행기를 쓰던 중에, 재단으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동행기를 책으로 내 보자는.
지난 달 교토 여행의 한 자락이 마침 고베의 지진박물관(기념관)에 닿아있어 저로서는 출간과 관련한 유용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것이 어제 소개한 강렬한 아래 작품이었던 거지요.
무라야마 선생님께서 어제 제게 다시 한 번 그림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간토지방에 미증유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땅에 균열이 생기고 보이는 곳마다 불바다가 된 가운데 육군 피복공장 공터에 피난민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가옥을 잃은 4만 명 가까운 이재민들이 운집한 이곳에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일어났다. 불덩어리가 바람을 타고 솟구쳤고 화염 소용돌이가 일면서 사람들 머리 위로 불덩이가 떨어졌고, 피난 보따리와 잡동사니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아비규환 지옥으로 변했다. 38000명 모두가 사망했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은 어린아이 4명 뿐이었다."
작품은 간토대지진 다음 해에 펴낸 '제도 대지진 화보'에 수록된 석판화로, 작가는 우라노 긴지로랍니다.
<사람과 방재미래센터>는 29년 전에 겪은 '고베 대지진'을 기리기 위한 시설이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간토 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기획전시를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마주할 수 있었던 거지요.
상설 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간토대지진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간토대학살'에 관해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은 크고 강렬한 지진을 여러 차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른바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불리는 말발굽 모양의 환태평양 조산대(Circum-Pacific belt) 의 중심에 있습니다. 지진의 약 90%, 화산폭발의 75%가 이 불의 고리를 따라 발생하지요.
제가 읽은 일본 소설 중에 지진으로 시작되는 것이 있습니다.
방학을 맞아 초등학생 어린 남매가 처음으로 저희들끼리 다른 지역의 외가를 놀러갑니다. 그 전까지는 엄마와 함께 가곤 했지만. 외할머니 집에 간 날, 그만 지진이 납니다. 남매가 죽게 되지요. 졸지에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부부는 제 정신일 수가 없지요. 왜 하필 그날 외가에 보냈는지, 그것도 아이들끼리만. 후회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는 부부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어 갑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지진 대비 포스터 공모전을 하나 봅니다. 어린 시절 그렸던 반공 포스터가 생각났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무조건 주입됐던 반공 교육처럼 일본 어린이들에게 지진 교육은 태생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서글픈 일입니다.
간토대지진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중 가장 먼저 출판 된 <양들이 분노할 때>의 작가 에마 슈의 두 딸의 그림도 여기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점심이 차려진 다다미방의 원탁에 앉아 가족들과 식사하려던 찰나,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충동을 느꼈다. 첫째딸이 젓가락을 쥔 채 "엄마, 된장국이 쏟아져."라고 소리쳤다. 집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와중에 자고 있던 둘째딸을 안고 순식간에 안마당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뒤따라 나올 아내와 첫째딸을 위해 뒷문을 열어놓고 앞마당을 향해 질주했다. 잠옷 차림에 맨발인 채로.
무라야마 도시오 옮김, 유영승 지음 <한일이 함께 풀어야할 역사, 관동대학살> 중에서
저 그림 어딘가에도 쏟아지는 된장국에 질린 표정으로 어쩌지 못하고 있는 어린 소녀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