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간의 시간

신아연의 영혼맛집 905

by 신아연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계획했던 대로 '관동대학살'에 관한 원고를 쓰면서 보냈습니다. 연휴 4일 동안 겨우 200자 원고지 100매 분량의 글을 쓰면서 마음판에 대지진이 일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100년 전에 일어난 관동대학살로 뒤집혀진 제 인생이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생각할수록 기이한 인연입니다. 제가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의 글쓰기 선생이 된 연유부터도 그렇지만, 이사장님께서 지난 해 8월 중순 어느 날, 9월 2일 관동대학살 100주기 위령제를 지내려고 일본을 다녀와야 하니 그 주는 수업을 못하겠다고 하셨을 때 뜬금없이 왜 나도 데려가 달라고 했으며, 그 일이 있기 몇 달 전 왜 자꾸 일본이 가고 싶었는지... 마치 지진 나기 전 시시각각 지각판이 이동하듯이 그 무렵부터 제 마음과 영혼이 재편성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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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기 3개월 전, 호주에서 두 아들과 10~15년 만의 극적인 완전 화해가 있었고, 비록 전남편은 얼굴도 못 보고 돌아왔지만 가정회복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중에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네 가정회복은 내게 완전히 맡기고 너는 내가 맡기는 일을 하라."는 말씀과 함께. 그러면서 느닷없이 제가 일본을 가고 싶도록 만드셨던 거죠. 그리곤 참석하고 온 위령제에 관한 글을 쓰게 하시면서 제 여생의 길을 차츰차츰 끌어가고 계시는 거죠. 마치 갈 길을 모르던 아브라함을 인도하시듯.




저는 관동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일본의 사죄를 받아 진정한 화해를 한 후 한일관계를 새롭게 하는 일에 남은 생을 걸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김이사장님을 비롯하여 이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다 같은 결심입니다. 저는 글을 걸고, 이사장님은 재산을 걸고, 법학자들은 법률지식을 걸고, 예술인들은 자기 표현을 걸고... 저마다 자신의 것을 다 겁니다.




어째서 이렇게 되는 걸까요. 알면서도 곰곰히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진리와 진실의 힘' 입니다. 진리란 그런 것입니다. 마치 추운 겨울 날 따스한 햇살 아래, 어두운 밤 밝은 등불 아래 사람이 모이는 자연스러움처럼.




누군가 제게 "왜 당신은 관동대학살 진상 규명에 모든 것을 거냐?"고 묻는다면 "그게 옳은 일이니까.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까."라고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관동대학살을 아예 몰랐던 사람은 있어도 일단 안 이상 이 일을 모른 척 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저와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사람들의 공통 체험입니다.




양심이 완전히 마비되지 않은 이상 이 일을 모른 척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마치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 같은 자기혐오감이 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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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대학생 때 우연히 관동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듣고는 이후 결혼도 안 하고, 교사라는 생업도 접고, 돈이 없어 먹고 잘 곳도 변변치 않으며, 그러다보니 몸에 병을 얻어가며 이 일에 일생을 걸어 온 65세 남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가해국인 일본 남자입니다. 자기 나라가 잘못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일생을 바친 것이죠.




그 사람에 비하면 저는 60세에 겨우 이 일에 뛰어들었고, 이 일로 새로 생업을 삼았으면 삼았지 이 일 때문에 접어야할 생업도 없고, 돈은 어차피 없고, 돌봐야할 가족도 없고, 그러면서 글을 쓸 줄 아니 얼마나 안성맞춤인지요. 무엇보다 저는 피해국의 국민입니다.




가해국 사람들은 피해국에 사과를 해야 한다고 자기의 전 생애를 걸고 있는데, 피해국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현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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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영식 작가





저는 지난 연휴 동안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자료를 뒤지고 찾으며 그날의 진상을 알아갈수록 가슴이 쿵쾅거리고 쥐어짜듯 옥죄서 숨을 쉬기가 어려운 순간순간을 맞아야 했습니다.




학살 방법이 너무나 잔혹해서, 나라 잃은 민초의 생이 너무나 처참해서 타이핑을 하는 손가락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러느라 나흘 동안 원고를 100매밖에 쓰지 못했던 거죠.




연휴 내내 학살의 충격을 더듬느라 넋이 빠진 듯 얼굴이 멍하고 핏기가 줄어 모처럼 밖엘 나가니 "어디 아프냐, 무슨 일이 있었냐?"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너무나 힘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알량하나마 작가다. 작가라면 이 글을 써야만 한다. 그것이 작가로서의 양심이며 역사에 대한 책임이다."라고 제 자신을 다그칩니다.




저는 제가 쓴 책을 팔아 처참히 학살 당한 6661명의 희생자를 위한 조촐한 추모관을 지어드리고 싶습니다. 일본에도 똑같은 추모관을 짓고 싶습니다.




그 소망이 제가 지금 이 책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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