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권하는 국가

신아연의 영혼맛집 906

by 신아연


엊저녁에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75세 이상이면 국가가 안락사를 시켜주는 일본영화입니다. 'PLAN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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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온통 일본에 꽂혀 있습니다. 원래도 일본소설을 좋아하지만 관동대학살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교토를 방문하게 된 것도 그렇고, 그밖에 보이고 들리는 것이 죄 일본에 관한 것들입니다.



영화 대사 중에 "일본사람들은 국가 정책에 잘 따른다. 개인 이전에 국가를 중시한다."는 말이 오싹하게 와닿았습니다. 국가가 지원하는 안락사 제도에 국민들의 호응이 클 것이라는 암시였는데, 저는 이 말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국가가 주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렸을 때에도 '국가는 늘 옳다'는 믿음으로 착실히 조선인을 죽였겠구나란 생각에 오싹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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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이 함께 풀어야 할 역사, 관동대학살저자유영승출판푸른역사발매202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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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관동대학살 생존자의 증언저자정종배출판창조문예사발매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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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저자민병래출판원더박스발매2023.09.01.




지진의 혼란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타거나 불을 지르고 다닌 조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그것이 모두 유언비어였다는 것은 6661명이 무참히 학살된 뒤에 밝혀졌습니다.



지진을 생전 처음 경험한 사람들 아닌가요? 조선에서 태어나 지진이란 건 몰랐던 사람들이 이국 땅에서 지진을, 그것도 유례 없는 대지진을 만났으니 어찌할 바 몰라 허둥댈 판에 용의주도하게 동네 우물에 독을 풀고, 건물과 가옥에 방화를 하러 다닐 정신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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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로 돌아가, 초고령 사회의 해법은 고령자들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는 것이며, 그 기준을 일단 75세로 잡고 점차 65세로 제거 대상 연령을 낮춰가겠다는 게 정부의지입니다.



해당 연령의 노인들이 시설에서 줄줄이 안락사하고, 죽은 것이 확인되면 벨트, 지갑, 악세서리 등 소지품을 제거한 후 화장 시설로 옮겨지는 일련의 과정이 제가 3년 전 동행하고 온 스위스 안락사 현장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영화는 가족이나 지인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는 설정이 아니라 오직 당사자 혼자 죽음의 침상에 오르는 '공장식 안락사'를 보여줍니다. 일종의 도살인 거죠.



초고령사회, 국가에 경제적 짐이 되는 노인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가상의 해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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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 감독인 탓에 주제에 비해 딱히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본에 꽂혀 있는 제게는 일본인 특유의 기질이나 태도를 엿보게 하는 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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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을 해로한 동갑내기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93세)가 지난 5일, 동반 안락사를 함으로써 우리나라 안락사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그 불똥이 제게 튀어 어제는 MBC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 '피디수첩' 제작진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난 해 jtbc 방송사에 이어 꼭 1년 만입니다.



놀라운 점은 피디수첩 제작진의 문자가 온 것이 공교롭게도 영화 <플랜 75>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무렵이었다는 거죠. 마치 "자, 영화 잘 보셨나요? 이제 우리와 안락사 논의를 해 볼까요? "라고 기다렸던 것처럼.



관동대학살도 그렇고, 안락사도 그렇고, 남다른 체험을 함으로써 이래저래 무거운 죽음을 운명처럼 끌고 다닙니다. 두 죽음을 어깨에 올려야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면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써야겠다는 각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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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여행기를 쓰다 말고 곁길로 빠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내일부터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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