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영혼맛집 915
어제 제 글로 여러분들께 불편과 심려를 끼쳤습니다. 도대체 누구와 그렇게 심하게 다퉜으며, 어쩌다 그런 막말까지 들었냐, 그러고도 계속 만나야 하는 사람이냐 등.
어차피 싸움과 갈등이란 '나의 옳음과 너의 옳음'이 부딪히는 것이니, 어떤 사안을 놓고 나는 나의 관점에서, 너는 너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 간극이 도무지 좁혀지지 않을 때 격렬한 언쟁이 시작되는 거지요. 그 사안이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면, "저런 인간 다시는 안 본다."로 끝낼 수가 없기에 더욱.
저의 관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돌려놓기 위해 억지와 매도를 부리다 못해 인신공격을 퍼붓는 지경에 이르니 제가 아연실색했던 것입니다. 싸워도 지금까지 그런 비열한 소리를 하면서 싸워본 적은 없어서 마치 '신무기' 대하듯 신기하기조차 했습니다.
여북하면 '인신공격의 오류'라는 말까지 있을까요. 즉, 상대방의 말에 반박할 때, 그 말에 반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으로써 생기는 오류라고 사전이 정의하는.
그런데 그 남자가 제게 한 것은 실상 인신공격도 아니죠, 뭐. 책을 열 권 넘게 내고도 책 팔아 돈도 못 버는 주제니 그게 무슨 작가냐고 한 건 '뼈 때리는 진실'이지 오류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상처받기는 커녕, 제가 오히려 사과했습니다. 당신이 그런 막말까지 쏟을 정도로 내가 당신을 화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차분히 대화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서 미안하다고.
어차피 사람은 거기서 거기, 유사이래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막말을 한 그 남자나 소리를 지른 저나 하나님 보시기엔 도긴개긴이죠.
그럼에도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일에 대해서만큼은 완결을 지어야 하고, 그래야 재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 남자는 더 이상 제게 막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저는 또 다시 소리를 지르지 말아야 하는.
재발하더라도 그 상태 그대로 재발하는 것과 한 번 매듭을 지은 상태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대처나 책임에서 달라질테니까요.
전남편과의 관계가 풀어지지 않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저는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 사람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10년 전 저와 헤어진 그 자리에서 감정이 맴돌고 있는 거지요. 세월이 흘러도 헤집어진 상처가 그대로란 말이죠.
매듭을 짓고 완결을 해야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각자 길을 갈 수 있는데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만 가다가 그 사람이나 제가 죽어버리면, '완결'이 아니라 죽음으로 '종료'되어버린다면... 그 사람을 위한 기도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한일관계, 특히 제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관동대학살에 관한 것도 원리는 같습니다.
'어차피 지난 일, 그것도 100년이나 지난 일에 무슨 사과며 용서냐, 지금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럴 시간 있으면 앞 일이나 생각하자, 과거에 발목잡혀 있지 말고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서로 잘 지낼 궁리를 도모하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이지요.
그런데 보십시오. 그 남자와 제가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지 않고 어떻게 앞으로 잘 지낼 수 있겠습니까. 그냥 덮어버린다고 그 앙금이 없어지나요?
만날 때마다 서걱거리고, 어색해 하며, 눈길을 피하고, 내가 이리 가면 그 사람은 일부러 저리 가고, 돌아서는 찝찝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저 여자가 글을 못 쓰는 건 사실이니까, 글 써서 돈을 못 버는 게 그 증거니까.' 이러면서 자기 대화로 합리화하고... 이 무슨 소모전인가요?
한일관계도 그렇다는 것이죠. 그러다 어느 한 쪽이 더 힘을 가지게 되면(지금은 일본이 한국보다 더 힘이 있으니까 저렇게 뻔뻔한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듯이) 그때는 눌렸던 심적 압박이 증오나 공격으로 터져나오게 되는 거지요.
그러기에 지금이라도 풀자는 것이 관동대학살 진상규명에 매진하는 한국과 일본의 양심있는 사람들의 한목소리인 거지요.
ㅇㅇ 씨,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합니다. 차분히 대화하려 하지 않고 냅다 소리를 질러 미안합니다. ㅇㅇ 씨가 제 사과를 받아주시면 그 다음 순서로 예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일을 ㅇㅇ 씨와 예수님 앞에 완결한 후 저는 다시 자유롭고 싶습니다. 전처럼 가볍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