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

신아연의 영혼맛집 919 / 교토 여행기 18

by 신아연


사진을 복원했습니다. 마치 기억을 복원하듯이.



스마트폰을 개통한 Kt 대리점에서도 못 하겠다고 하여, 결국 삼성 서비스센터에 가서야 복원할 수 있었는데 사진이 사라진 이유는 설명을 듣고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은 사라져도 여행의 체험과 느낌은 남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갈무리를 했을 때, 사진은 기억이고 체험은 삶 자체라면, 기억을 잃었다 해도 느낌은 그대로임에도 우리는 '기억다발'을 '나(체험, 느낌)'와 동일시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기억=존재'라면 치매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은 '나' 자체를 잃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기억을 모두 잃으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잃게 되는 것일까요? 기억이란 살면서 '축적된 의식'이니 오직 이 세상 것이죠.



의식과 생명이 이 세상에만 속해 있다면 기억을 잃는 것은 곧 죽음일테지요.



그러나 생명이 영속적인 것이라면, 즉 다른 세상과 연결되어 이 세상에까지 걸쳐 나타난 것이라면, 사진상실이 추억상실은 아니듯이 기억상실이 생명상실은 아니라는... 이런 생각을 하며 어제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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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되찾았으니 교토 여행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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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의 '건강, 연애, 머리(영리해지는)' 이 세 가지 물은 결국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요.



건강하게 살면서, 연애와 사랑의 결실로 가정을 잘 꾸리고,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 해서(다른 재능 포함하여)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 말하자면 세상적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는 거죠.



저는 그 중 한 가지 물도 마시지 못했지만 제 관심은 바로 그 옆에 있는 묘지에 꽂혔습니다. 마치 전 지구가 묘지로 덮힌 것 같은, 세상 사람 모두가 죽음으로 잠들어 있는 것 같은 광경 앞에 아득, 아연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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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진을 잃고 가장 안타깝던 건 바로 청수사 묘지 사진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교토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이 장소를 방문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마음에 새기고 있던 묘비명이 떠올랐습니다.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 있듯이


한 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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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글도 생각났습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조금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들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시켰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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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청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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