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구야?

신아연의 영혼맛집 935 / 수요 참나 1

by 신아연


오늘부터 수요일에는 '참나'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월, 화요일은 저의 신앙 여정(예미녀)을, 수요일은 참나에 대하여, 목, 금요일은 안락사(조력자살)에 대한 생각을 나눕니다. '신아연의 영혼맛집' 2024년도 메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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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virichards, 출처 Unsplash





신앙참나 조력자살은 이어져 있는 주제입니다. 무엇으로? 생명참삶의 줄로.



중국집 메뉴판에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 다양한 음식 종류가 적혀 있지만 요리의 테마는 같듯이, 영혼맛집도 '생명과 참삶'이란 테마 아래, 요일별로 세 가지 메인 메뉴를 준비합니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드시면 말씀하세요. 배달하지 않겠습니다.^^ 먹어볼 만 하다 하시면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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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그린 분을 찾습니다. 사용료를 내고 싶습니다.





오늘의 요리는 '참나'입니다.



'참나'가 있으면 '거짓 나'도 있겠지요.



참나가 진짜 나, 좋은 나라면, 거짓 나는 말 그대로 거짓이거나 가짜 나, 안 좋은 나라고 뭉뚱거려 말할 수 있겠고요.



기독교 신앙적으로는 옛 사람을 거짓 나로, 거듭난 사람을 참나로 구분합니다만, 옛 사람은 또 뭐며, 거듭난 사람은 어떤 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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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님과 어떤 사람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동문서답도 유만부동이지, 이쯤되면 개콘(개그콘서트) 수준입니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거냐고 엉뚱한 대꾸를 하는 거지요.



그런데 못 알아 듣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난다, 다시 태어난다' 이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실상 얼마나 될까요.



다른 말로 '참나'가 무엇인지 생선 살 발라내듯이 매끈하게 발라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참나는 고사하고 '나는 누구인가'에 선뜻 답하는 것조차 쉽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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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야?”



어느 중학생이 누군가로부터 불쑥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시다.


보통은 가장 먼저 이름을 말하겠지요.



“김**입니다.”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와서 “** 중학교 2학년 김**입니다. 이렇게 덧붙여 보겠지요. 그런데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아 ”저는 어느 동네에 살며 부모님의 직업은 **입니다. 동생도 있고요.“ 라고 자기 소개를 좀 더 늘여봅니다. 그래도 미진한 것 같아서 좋아하는 학과목, 성적, 취미 등을 말합니다. 이렇게 수식어를 붙여가면 갈수록 왠지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걸맞는 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영화나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셨지요. 그 사람들은 “내가 누구예요?”하고 주변에 묻고 다니죠. 기억을 되찾고자 본인의 이름, 나이, 다니던 학교나 직장, 가족관계, 사는 곳 등등을 묻지요.



그런데 우리도 방금 전 그런 것들을 나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기억을 되찾는다고 나를 되찾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요. 기억이 온전하면 내가 오롯한 것이고, 기억을 잃어버리면 나를 통째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억이 뭔가요? 기억이란 내 생각, 내 감정, 내 느낌, 내 마음, 내 기분이 만들어낸 ‘경험 덩어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나의 생각과 감정이 축적된 과거의 경험들, 그것이 기억입니다.



수식어도 나가 아니고, 기억도 나가 아니라면 결국 ”나는 나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겠습니다. 네, ‘나는 나다’가 정답입니다. 나를 설명하고 수식하는 말들은 진짜 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살면서 갖추게 된 우연이나 인연에 따른 조건일 뿐 나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내가 남자인 것, 혹은 여자인 것,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 21세기를 사는 것, 이런 부모님을 만난 것, 키, 외모, 직업, 적성, 식성 등은 나의 삶의 조건과 배경일 뿐 나 자체는 아닙니다. 나는 그저 나일 뿐, 본래의 나, 순수한 나는 길게 붙는 꼬리표로 설명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하고.



연이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고 묻기도 합니다. 우리 중에 설마 ‘몸이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생각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마음도, 기억도, 몸도 내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처음부터, 여전히, 항상, 영원히 존재하는 나, 그런 나는 없을까요?



생각과 감정과 기분과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늙고 병이 들어 몸이 전과 달라지고 사고나 장애로 육체가 온전치 않아도 나는 나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나. 그런 나는 이 세상을 떠나도 계속해서, 영원히 존재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하니까요. 변하는 나 말고 안 변하는 나를 찾아보자고 했잖아요. 그러니 그런 나는 이 세상 밖에서 찾아야겠지요. 그런 나는 ‘정신적 나’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몸으로의 나는 변하고 변하다 결국 죽으니까요.



그런 나의 이름을 영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참나’라고 합시다.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나와는 뭔가 다른, 내면의 오롯한 존재, 삶에서 겪는 이런저런 고난에도 깨어지거나 손상되지 않는 존재의 핵심, 그것의 이름으로.



'수요 참나', 다음 주 수요일에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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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amfelici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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