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이래서 하면 안됩니다
서서히 누명을 벗는 느낌입니다. 마치 재심을 받는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언제 형사재판 중이었냐고요?
아시다시피 3년 전인 2021년 8월, 얼결에 스위스 안락사 현장을 따라가게 되었지요. 64세 폐암 말기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리였습니다. 그분은 저의 오랜 독자였고요.
그 인연으로 거길 다녀오고 1년 후, 전격 회심하며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저자신아연출판책과나무발매2022.08.26.
그리고는 안락사(조력자살)를 반대하는 책 <스위스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내고 무수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안락사 찬성이 80%가 넘는 상황에서 제 책을 읽은 사람 거의 다가 범죄자 취급하듯 저를 몰아댔습니다. 시간이 아깝고 돈이 아깝다, 그러니 책값을 물어내라는 식이었지요.
그러던 중 지난 해 중순 경부터 상황이 미미하게 돌아서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두터운 얼음 밑으로 숨죽였던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작고 미세하게 "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실은 귀 기울여볼 만한 얘기야."하는 피드백이 오기 시작했던 것이죠.
사람들은 제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한다고 말합니다. 안락사 찬성의 노도(怒濤) 앞에 반대의 목소리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요, 풍랑 속 가랑잎 배와 같다는 거지요.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계속 치면 어떻게 될까요? 바위에 계란 자국이 남겠죠. 바위에 계란물이 들겠죠. 훗날 사람들이 "이 바위에는 왜 노란 흔적이 남아있을까? 누가, 왜 이렇게 한거지?"하며 한번 쯤 눈길은 줄테죠.
한국의 조력자살 입법화를 막기 위해 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라 '계란으로 바위 물들이기'를 하렵니다. "잠잠하라!" 한 마디로 집어삼킬 듯한 풍랑도 잠 재우신 예수님에 의지하여, 안락사 찬성이란 격랑 속을 연약한 가랑잎 배로 저어가렵니다.
이제 저는 조력자살에 관한 두번 째 책을 준비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피드백에 답하는 위주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라 조력자살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는 형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며칠 전 이런 댓글을 받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누명을 벗고 재심을 받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두번 째 발걸음을 뗍니다.
"작가님의 책 리뷰에 부정적 내용이 왜 많은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스위스나 네덜란드 등, 이미 시행 중인 나라에서 관련 법안이 하루아침에 통과된 게 아니라 30, 40, 50년 토론과 논쟁을 거듭한 후에 결의되었지요.
국민 의견을 비롯해서 호스피스 병동 의료인, 죽음의 문턱에 있는 가족을 돌보고 지켜 본 사람들, 평생 죽음에 관하여 연구하거나 많은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수십 년 이상 머리를 맞댄 후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의 깊이가 충분한 시간의 숙성 과정을 통과했을 것이고요.
이런 의미에서 작가님으로서는 스위스에서의 경험이 인생의 대변혁을 가져올 사건이었지만, 그 갑작스러운 개인의 내면 변화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기엔 부족했다는 느낌입니다. 의료현장이나 관련자들의 체험이 함께 기반이 된 반대 입장이라면 지금보다는 더욱 많은 공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