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아연 Apr 16. 2024

이별은 차마 못했네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추모하며


'신앙이 도박'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인간적인 노력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왜 노력이 안 들어? 돈 들어가지, 잠 못자고 몰두하지, 시간 쏟아붓지, 애 쓸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도박의 승부 자체는 노력으로 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로또가 내 노력으로 당첨되나요? 



마찬가지입니다. 신앙도, 믿음도 그 자체는 내가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도박의 결과처럼 거저 주어집니다. 그러기에 '선물'이라고 합니다. 



저는 59세 때 그 선물을 받았고, 80대인 제 지인은 39세 때 받으셨다고 합니다. 아직 선물을 못 받은 분들도 많고, 그 선물 아예 안 받고 싶다는 분도 있을테지요. 받았던 선물을 되물린 분도 제 독자 중에 몇 분 계십니다. 어떤 연유로 신앙에 등을 돌린 거죠. 



어제 제가 어떻게 하면 그 선물(믿음)을 받을 수 있는지 힌트를 알려드린다고 했지요.


그 전에 다시 한번, 그 선물 내용이 뭐였죠? 무슨 선물이죠? 네, 신앙이죠.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고스란히 믿어지는 선물. 그 결과 참나를 발견하고 인생이 질적으로 차원 변화를 하게 되는. 








여러분, 그건 말이죠. 내가 품는 '소망의 순도와 강도'에 달려있습니다. 



무슨 소망이냐면 '인간적으로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살다 죽을 수는 없다. 한 번뿐인 인생이다. 나는 다시, 새롭게, 힘차게 날아오르고 싶다. 결코 결코 결코 주저앉지 않겠다. 대충 때우듯이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소망이 강렬하면 할수록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길이 다 막혔을 때, 막다른 길에서, 플랜 B가 없을 때 비로소 하나님 손에 들린 '그 선물'에 눈길이 가더란 말이죠.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 이사야 40장 31절 









저는 요즘 <한계를 껴안다, 닉 부이치치의 허그>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팔다리 없이 태어난, 본인 표현대로라면 엉덩이 밑에 붙어있는 '닭발' 같이 생긴 발가락 두 개가 전부인 소망 전도사. 마침 호주사람인데다 그가 다녔던 그리피스 대학 부근에 제가 살았던 터라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닉은 말합니다.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소망을 지킬 수 있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소망을 잃는 것은 팔다리를 잃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이기에."



소망의 근원이 하나님, 곧 믿음이라는 고백입니다.  



책 제목부터가 소망적이지 않습니까. 팔이 없는데 어떻게, 누굴 껴안아 줄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지금 그는 전세계 사람을 껴안아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다녀갔었죠. 



닉은 항상 신 한 켤레를 신발장에 고이 넣어둔다고 해요. 언젠간 신어보리라는 소망을 품고. 태어나 42년 동안 그 소망이 빛 바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제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아주 강렬한.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선물로 받은 후에. 그 선물은 제게 '플랜 B'가 없었기에 받을 수 있었던 거고요.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요. 








오늘이 '4. 16 세월호 참사' 10주기죠. 제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지 반 년만에 그 일이 터졌고, 그 이틀 전이 제 생일이라 독자 한 분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입었던 옷, 갔던 식당, 나눴던 대화 등이 늘 생생합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죄책감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죠. 이틀 후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갈지도 모르고 한가하게 생일 점심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 



어젯밤 늦게 성악가 구미꼬로부터 동영상을 받았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노래로 추모하게 되었다고. 구미꼬는 저의 아주 귀한 독자로 저와는 언니 동생 사이죠. 



 '이별은 차마 못했네', 박노해 시인의 노랫말이 주세페의 곡에 얹혀, 구미꼬의 애잔한 음색을 타고 흐르며 듣는 이의 가슴을 에입니다. 저의 오랜 죄책감이 덜어지고 씻겨나가는 것 같습니다.   



 사랑도 다 못했는데 이별은 차마 못하겠네 


 웃다가도 잊다가도 홀로 고요한 시간이면


 스치듯 가슴을 베고 살아오는 가여운 내 사랑


 시린 별로 내 안에 떠도는 이별 없는 내 사랑


 안녕 없는 내 사랑 


  - 박노해 <이별은 차마 못했네> 가운데-                                           


https://naver.me/G5JG9JX8

https://youtu.be/_4XsJ9GLsfU









작가의 이전글 예미녀는 도박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