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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Apr 17. 2024

내가 참나로 살 수 없는 이유

신아연의 영혼맛집 949 / 수요 참나 3


 










'수요 참나' 세 번째 시간, 나는 누구인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첫 시간에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나라고 알고 있었던 나는 오롯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안에 참나가 반드시 있습니다. 




나라고 여기고 살았던 몸과 마음, 생각은 변하고, 변하는 것은 영원한 나라고 할 수 없으니까 안 변하는 나, 참나를 찾아야겠지요. 



참나는 마치 보물처럼 아직 찾아지지 않았거나, 원석처럼 제련을 기다리고 있거나, 깨어나지 않은 알이거나, 미운오리새끼인 줄 아는 백조이거나, 개구리가 되기 전 올챙이거나, 나비로 변신하기 전의 애벌레로 비유될 수 있겠습니다.  








참나에 대해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살아질 것 같지가 않다고요? 왜 그럴까요? 왜 안될까요? 안 되는 이유라도 알아야겠습니다. 



이제부터 저와 함께 내 안을 들여다 봅시다. 무심코, 습관적으로, 타성에 젖어 살아온 내 모습을 엠아르아이(MRI)로 스캔하듯 샅샅이 파악해 보자는 거죠.  








우리가 참나로 살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이며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 모두의 ‘나 중심성’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와 세상을 분리한 후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를 ‘참나’와 구별하기 위해 ‘자아’, ‘에고’라고 이름을 붙일게요. 




그게 뭐가 문제냐고요? 뭐가 나쁘냐고요? 맞아요.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 거죠. 내가 오늘 죽는다면 더 이상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론이고 이런 공부조차 의미가 없겠지요. 



어차피 우리는 개별적 신체로 나와 다른 사람이 분리되어 있고, 생각도, 감정도, 느낌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나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 왜 문제일까 말이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거예요.  







© natejohnston, 출처 Unsplash





이런 흔한 예를 들어볼게요. 여럿이 찍은 사진에서 누구나 자기 얼굴부터 찾죠. 본능적으로 작용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성 때문이지요. 자기가 가장 중요한 거지요.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단체 사진에서 자기가 잘못 나왔으면 남들한테 보여주기도 싫지요. 그 사진을 본인이 찍었다면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안 보내주기도 하지요. 그런 경우가 바로 자기중심성이 갖는 폐해이자 문제라고 해야겠지요. 




이 정도야 애교 수준이지만 지나칠 경우 큰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조차 파멸합니다. 가령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모르는 아무나 죽여버리는 ‘묻지마 살인’ 같은 거죠. 그 결과 자기 인생도 함께 망가지지요. 




이런 극단적인 사례는 논외로 하고 여기서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나 중심성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나 중심성이 참나를 못 보게 하여 참나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나 중심성을 ‘참나의 맹점지대, 사각지대’라고 이름을 붙여보기로 해요.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는 의미에서. 






https://blog.naver.com/timetosapyo/223396589091


 다음 주 수요일에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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