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종교에 의지할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그 ; 구체적으로 해 보진 않았어요. 하지만 삶 자체가 종교성을 떠나 존재할 순 없지요. 특히나 죽음이 임박한 사람에게는.
나 ; 그런 것 말고 신앙을 갖는 것 말이죠. 기독교인이 되어 하나님을 믿는 일.
그 ; 아니요. 그랬기에 조력사를 택할 수 있었겠지요.
나 ; 그럼 선생님은 어디로 가시게 되나요?
그 ; 글쎄요. 어디든 가겠죠. 갈 곳이 있다면.
나 ; 천국과 지옥이 정말 있다면 그때는 어쩌시겠어요?
그 ; 있다면 나는 좋은 곳으로 갈 것 같아요.
2021년 8월, 스위스에서 조력사한 64세 폐암말기환자였던 제 독자와 나눈 마지막 대화입니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 동행해 준 것에 대한 감사로 제게 <상처받지 않는 영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책 두 권과 스위스 시계, 심지어 돈까지 100만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분이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신앙'이었습니다. 그분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제게 '하나님을 믿을 예감'과 나아가 신앙의 길로 돌아서는 '결정적 단초'가 되었던 거지요.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사람은 모두 8명, 그 가운데 제 영혼만 뒤흔들린 이유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마치 호두껍질처럼 단단한 두개골 속 뇌를 건드리듯, 그 마지막 대화가 견고한 자아 속에 갇혀 있던 저의 '참나'를 화들짝 깨어나게 한 연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끊임없이 죽음공부를 하고도 코 앞에 닥친 자기 죽음 앞에서, 이제 수 분 후면 행선지가 정해질 것임에도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그분 말씀은 제게 큰 충격이었던 거죠.
저는 매사 두루뭉실한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강박적일만큼 분명한 것을 좋아하지요. 하물며 내가 죽어서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것은 제겐 말할 수 없는 공포입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바로 그거니까요. 죽은 후를 모른다는 것. 그랬기에 그 자리에서 분명한 답을 얻는 일생일대의 선물을 저만 받았던 것이겠지요.
환자 ; 이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의사 ;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환자 ; 나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심지어 그다지 영적이지도 않죠. 하지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럴 리 없지.
의사 ; 네, 하지만 만약 이게 끝이라면요?
이 대화는 2016년,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조력사를 택한 간부전 말기 환자와 그의 자살을 도운 의사가 나눈 것입니다. 이후 '조력사 전문의'가 된 스테파니 그린의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에 나옵니다.
어이없게도, 경악하게도 그 의사는 죽음 앞의 환자에게 이렇게 부연합니다. 일종의 유도심문이죠. 질문 자체를 의도를 가지고 휙 돌려버리는 건 정말 악한 일이죠.
"그렇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으세요? 혹은 과거에 무엇을 다르게 했기를 바라세요?"
왜 과거를 묻냔 말이죠.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 건지 그것이 알고 싶은 절체절명, 절박한 사람에게 지금 과거 따위가 중요한가 말이죠. 그 순간 그는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하고 회한을 곱씹자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번지수가 틀렸지요. 단순히 안락사를 시행해 주는 의사가 그걸 알 리가 없잖아요. 잘못 물은 거예요.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답은 조력사를 시행해 주는 의사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저자신아연출판책과나무발매2022.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