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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Apr 24. 2024

탐욕의 절대반지

수요 참나 4


'수요 참나' 네 번째 시간, 나는 누구인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진짜 나를 찾아서 뭐할거냐고요? 잘 살려는 거지요. 제대로 살려는 거지요! 



"난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하실 분도 있겠지요. 이런 말은 마치 운전할 때 "내게는 사각지대가 없다."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내 자동차에는 사이드미러가 필요없다."라는 말로도 들리고요. 








운전 사각지대는 전방, 후방 다 있지만 특히 사이드미러를 보지 않고 차를 몰았다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요. 



 사각지대, 맹점지대는 우리 삶 자체에도 복병처럼 숨어있습니다. 


 


맹점지대란 잘 때 코를 고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집 밖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같은 방에서 함께 잔 사람이 말하기를 제가 코를 골면서 단잠을 자더라고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코고는 사람 중에 자기가 코고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코를 골았다고 하니 그랬냐고 했지 도무지 그런 적이 없는 것만 같았습니다. 코골이의 특징은 당사자는 모르고 남들만 아는 데 있습니다. 남들이 말해줘야 알지요. 








이처럼 우리 삶에도 자아(에고)로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보려고 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해야겠지만). 참나가 그렇습니다. 



참나는 육안과 달리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참나를 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깊은 눈, 영혼의 눈이 떠져야 합니다. 내 안의 사각지대, 맹점지대는 참나에 의해 비로소 보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사각지대, 맹점지대가 있을까요? 다른 말로 어떤 자기중심성이 있을까요? 



크게 나눠보면 지나친 욕심과 탐욕에서 오는 맹점지대,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데서 발생하는 분노 맹점지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채 판단 착오를 일으키는 어리석음의 맹점지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세 가지 영역의 맹점지대를 지금부터 나눠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탐욕이라는 맹점지대


   : 끝없이 소유하고 싶은 탐욕


 


욕망과 욕구가 나쁜 건 아니죠. 욕망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식욕이 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고, 성욕이 있기 때문에 종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 그래서 타고난 재능을 최대한 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입니다. 


 


그러나 그 욕망이 빗나갈 때가 있습니다. 가령 나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삼거나 이용가치로 보는 태도, 분수를 넘어서는 과도한 욕심과 집착, 명성과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 등이 참나를 가리는 자기중심적 욕망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욕망에는 오직 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이기적 동기가 작용하기 때문이니까요. 


 


욕망이 탐욕으로 선을 넘어가면 죽음을 부를 수 있습니다. 몸의 죽음, 관계의 죽음, 나아가 앞서 말한 참나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탐욕을 관리하지 못할 때 참으로 무서운 일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은 원래 스미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우연히 시냇물 속에서 반짝이는 반지 하나를 발견하고, 지가 몸이 보이지 않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반지임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 반지는 골룸에게 ‘내 보물’이 된다. 그는 반지를 소유하기 위해 절친한 친구를 살해하고, 사람들을 떠나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음침한 계곡에서 산짐승처럼 변해가는 신세가 된다. 몰골은 흉측하게, 본성은 야수처럼 변해 간다. 점점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망각하고 급기야 자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침소리(골룸)'가 그의 이름이 된다. 절대반지를 소유했지만 정작 절대반지가 그를 소유하고 만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돈을 욕망하지만 오히려 돈을 목적으로, 돈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골룸처럼 스스로에게 묻고 있지는 않나? ‘나는 누구였을까? 나는 무엇이 되어야 했을까? 내 진짜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라고 말이다. 인간의 진짜 문제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한계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욕망을 신으로 삼은 인간은 탐욕의 노예로 전락하고, 더 나아가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위해 타인을 억압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며 조종한다. 그리고 그 탐욕들이 서로 격하게 충돌함으로써 세상은 혼돈과 고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 김유복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음』 66, 67쪽 


 


또한 톨스토이는 우화로 탐욕이 부른 파멸을 경고합니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우화죠. 


 


옛날 어느 가난한 농부가 농장 주인에게서 놀랍고도 엄청난 제안을 받았다. “네가 내일 하루 동안 걸어 다니며 밟은 모든 땅이 다 네 것이 되게 해 주겠다.” 이 농부는 전날 뜬눈으로 밤을 새운 후 날짜가 바뀌기 무섭게 온종일 농장주의 땅을 밟다 못해 종종걸음을 치다가 그러고도 욕심을 주체하지 못해 뛰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 가자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조급함 때문에 더 빨리,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다. 그야말로 전력 질주의 하루를 보낸 것이었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하루가 다 지나가는 통에 애석하게도 뜀박질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는데, 출발지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너무나 지쳐서 그만 죽고 말았다. 결국 그에게 주어진 땅은 죽어 관이 묻힌 한 평에 불과했다. 








어떤가요? 욕심이 너무나 컸기에 죽고만 농부, 우리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을까요? 이 농부가 곧 우리 아닌가요? 



일생을 돈, 돈, 돈하면서 돈만 벌다가, 돈 아까워 사람도 안 만나고, 의미있는 일에는 한 푼도 쓰지 않고, 그저 움켜쥐고, 무작정 움켜쥐고, 악착같이 움켜쥐다가 어느 날 죽어버리는.  



다음 주 수요일에 계속하겠습니다. 


긴 내용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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