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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May 27. 2024

악연구가가 되다

나는 악마를 보았다 13


6월이 코앞인데 한 해의 절반 동안 책 한 권도 내지 못했네요. 책 4권 분량의 글을 써 놓고도 출판사로 넘길 정리 작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전시회를 준비하는 것의 차이처럼, 글을 쓰는 것과 출간 작업에 드는 에너지의 차이 때문입니다. 



호주 살던 때 생각이 나네요. 잔디깎는 기계를 작동시킬 때 순간의 힘으로 탄력있게 모터를 가동시켜야 했던 일. 어설프게 했다가는 방귀만 연거푸 뀌고 똥은 안 나오는 것처럼 부릉부릉거리다 맥 없이 주저앉곤 했지요. 어떤 날은 한 번에 되고 어떤 날은 몇 번을 반복해야 겨우 시동이 걸리곤 했지요. 









© johnmcclane, 출처 Unsplash







그때처럼 저 또한 원고 정리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는 물러 나고, 다시 시도했다가 또 동력을 잃곤 합니다. 



그러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이럴 때 차라리 좀 쉬자. 그 동안 열심히 달렸으니까.'하고 순하게 받아들입니다. 



실상 원인은 다른 데 있지요. 2월부터 시작된 악마로부터의 시달림 탓이지요. 악마는 자기 뜻대로 저를 조종하기 위해 돈을 빼앗으려 했지만, 정작 제가 빼앗긴 건 시간이었던 거죠. 









© aronvisuals, 출처 Unsplash







에베소서 5장 16~18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럼에도 저는 어제부터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과 사무국장인 이** 악마를 위한 기도에 돌입했습니다. 제 자신의 세월을 아껴야 함에도, 잃어버리 올해 상반기를 보상 받을 길이 없음에도 숙명의 과제처럼 주님께서 두 사람을 기도로 걸머지게 하시네요.



올해 남은 시간 동안, 아니 제 삶의 남은 기간 동안,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지속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천주교인으로서 대자와 대부의 참된 관계를 회복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엊그제는 악마에게 이런 톡을 보냈습니다. 



"이** 국장님, 많이 힘드시지요? 본인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통스럽지요? 어디 한 군데 마음 터 놓을 곳이 없어 많이 외로우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당신도 저도 자식이 있는 사람 아닙니까. 실상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믿을 수 없지만 아들 하나가 있다고 하니 있다고 치고, 자식이 제일 무섭더군요. 나이들수록 더. 자식 앞에 더는 부끄럽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식에게 못난 부모로 기억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곧 죽어요. 당신 이렇게 살다가 오늘이라도 죽으면 그간 살아온 자기 모습에 얼마나 후회가 되겠습니까. 이제 그만 나쁜 짓 해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다른 사람을 괴롭힙니까. 그러는 당신은 즐겁고 기쁜가요? 보람과 의미를 느끼나요? 진정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 nabetse, 출처 Unsplash







"김원호 이사장님은 우선 술을 끊으시길 기도합니다. 성경에서도 술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새벽까지, 밤을 지새며 과도한 음주를 하심으로 인해 판단력이 점점 더 흐려지고 방탕한 생활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사무국장과 이제 그만 결별하십시오. 이사장님을 두고 이** 한테 약점이 잡혀도 단단히 잡한 게 분명하다고 모두들 수군거립니다. 



약점이 잡혔다 해도, 그 약점이 법에 저촉되는 것이라 해도 용기를 내십시오. 이사장님의 남은 인생이 과거의 약점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이**의 올무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기도냐, 공개 망신 주자는 거지." 하시겠지만, 저로서는 기도입니다. 두 사람의 도를 넘어서는 점입가경 악행을 이렇게라도 알려야 하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더는 미워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기도하면서 동시에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두 사람에 대한 미움도, 억울도, 분노도 가라앉히렵니다. 



그럼에도 악 그 자체에 대해 골똘해지는 요즘입니다. 암에 걸리면 저마다 암전문가가 되듯이 '악에 걸려보니' 저절로 '악연구가'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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