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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연 Jun 28. 2024

물가에 아이 내 놓는 심정

신아연의 나의 재판일지(2)


"신 작가, 띠가 뭐예요?"


"토끼 띤데요, 그런데 왜 제 띠를?..."


"고생이 끊이질 않길래 내가 띠를 다 물어보네요."


"하하, 이게 다 사는 재미죠. 경험이 풍부해야 글도 쓰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민, 공감 폭도 넓어지고요. 이번엔 아무 죄없이 소송 당하는 사람들이 법정에 설 때의 두려운 심정, 억울한 마음 이런 걸 느껴보게 되는 설정이라고 여깁니다."


"아이고, 그만 경험해도 되요. 이미 충분히 겪었어요. 언제 좀 편해지려는 거예요?" 



어제 저를 아끼는 독자께서 전화를 주셔서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얼마나 따스하고 감사하던지요!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 일 또한 인생 무대에서 또 하나의 장면이자 제가 맡은 연기라고. 다만 이번 씬(scene)은 좀 '빡세고' 이런 배역은 진짜 처음인데다 맡아볼 꿈도 꾸지 않았던 터라 연기하기가 곤혹스럽달 뿐. 



시험 직전까지 메모장이나 참고서를 덮지 못하는 수험생처럼, 감독의 큐(cue) 사인 직전까지 대본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배우처럼, 재판 시간 10시 15분 직전까지 답변서의 핵심 포인트를 짚고 또 짚었습니다. 



하도 쥐고 있어 꼬깃꼬깃, 너덜너덜해진 기소 첫 장과 답변서 첫 장입니다. 









긴장으로 목이 바싹바싹 타고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즉각 장이 반응을 하기 때문에, 목은 타건만 물을 마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랬다간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야할 판이니까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두렵고 떨립니다. 답변서를 꾸려주신 변호사님은 아무 염려 말라고 했지만 저는 염려가 됩니다. 당장 염려는 재판 중에 배가 아파 설사 기미가 오면 어쩌나예요."



도와 주신 변호사님은 '물가에 아이 내 놓는 심정'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딱히 그렇다기 보다, 만반의 준비를 시켜 놓고도 막상 의뢰인을 법정에 보낼 때는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변호사가 함께 출석하지 않는 한 그때부터는 오롯이 의뢰인 혼자 치러야할 몫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니까 아무리 답변서를 충실히 꾸렸다 해도 긴장한 나머지 법정에서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실수를 할 경우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거겠죠.







© meymigrou, 출처 Unsplash





저는 실전에 강한 편입니다. 소위 무대체질인 거죠. 



"나는 두 시간 짜리 강연도 원고 없이 할 수 있고,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씨알재단 측의 기소 내용과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을 완전히 외우고 숙지했다. 문제일 게 뭐란 말인가!"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강연은 일방적으로 혼자 떠드는 거고, 재판은 원고의 공격을 방어하고, 판사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건데, 강연과 어떻게 같아?'라고 말하는 또다른 내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재판안내'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2024카합20771', 제 사건 번호입니다. 



수맹(數盲)다 보니 수 자체를 외우는 일조차 문제가 많은 저지만, 사건 번호만큼은 바로 기억되더라고요. 다급하면 다 되는가 봅니다.  



피신청인 'Kㅇㅇ'. 제 이름이 영문으로 떴습니다. 나의 공식 이름은 아직도 '김아연(KIM AYOUN)'. 



이혼 후 성을 되찾으려면 호주에 가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걸 아직 못한 탓입니다.  



법정에서도 판사의 첫 질문이 제 이름이 확실히 뭔가였습니다. 



"채무자(피고)의 이름은 김아연입니까? 신아연입니까?" 



근데 그걸 왜 채권자(원고)가 답합니까. 제 이름에 대한 것을. 



"원래는 신아연인데요, 결혼 후 호주 국적을 가져서 그래요. 남편 성이 김씨고요. 그래서 김아연이 된 거죠." 




왠 오지랍인지, 친절한 이ㅇ희씨! 



'그놈 목소리'는 언제나 듣기 싫죠. 



저를 고소한 씨알재단 사무국장 이ㅇ희가 법정 문 앞에서, 예의 그 기분나쁜 음산한 저음으로 "잘 지냈어요?" 하고 제게 인사를 하는데, 마치 귓바퀴에 오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6개월을 죽자고 고문한 후, 이제 법정으로까지 끌고 왔으니 자기 딴엔 '확인사살' 직전의 본인 쾌감을 곧 죽게 될 저한테도 느껴보게 하려는 것이었겠지만. 





*기소 내용을 궁금해 하시는 독자들이 많은데요, 지난 글에도 간간히 밝혀왔지만,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터라 상세한 내용은 지금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네요. 7월 17일에 2차가 열립니다. 그때가 마지막이 될지, 또 끌지는 알 수 없지만 여튼 재판이 끝나고 나면 기소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격려, 응원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7월 17일 재판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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