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수업 6
저는 현재 코로나 자가격리 중입니다. 11일에 해제됩니다. 저는 혼자 지낸 지난 8년 동안이 거의 격리상태였기 때문에 지금도 일상처럼 아무렇지 않습니다(물론 이제 시작이고 아직 많이 남았지만). 오히려 저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는 아주 소중한 기회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이렇게 글을 쓰게 되네요.
스위스를 다녀온 후 제 속에는 많은 말들이 아우성치며 이 말을 먼저 할까, 저 말부터 꺼낼까 순서를 종잡을 수 없게 합니다. 그렇지만 스위스의 4박 5일, 아니 현장의 긴장으로 인해 거의 '무박 5일'을 보내고, 또 떠나기 전의 두려움으로 설친 잠을 보상하듯 요 며칠, 코알라처럼 잠만 잡니다.
친구와 지인들이 간간이 안부를 물어오고, 거기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무슨 대단히 숭고한 사랑을 실천한 것 마냥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죽음의 침상에 누우시기 직전, 얼싸안고, 어깨동무를 하고, 혹은 손을 거머쥐며 지상의 마지막 사진을 찍던 우리들에게 "야, 마치 내가 연예인이 된 것 같구나."하고 농담하시던 그분처럼 저도 연예인이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궁금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두려운 호기심이라고 할까요. 여하튼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은지 저는 압니다. 그 자리에 있기 전까지 저도 그랬고, 만약 그런 곳에 다녀온 사람이 있다면 저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을테니까요.
저를 만났다고 치고, 온갖 이야기 다 묻고 다 나눴다고 치고, 결론을 말씀드려 볼까요? 죽음이 곧 닥친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불시에, 누군가에게는 그분처럼 철저한 계획 하에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존엄사라고 하는 것 같지만, 존엄하게든 비참하게든 우리 모두는 죽게 됩니다. 그것도 곧!
그 사실을 명확히 깨달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두 아들에게 '엄마표 밥'을 지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두 아들로 이 세상에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겠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 하고, 부모로서 미숙했던 점에 용서를 구한 후 그럼에도 이렇게 잘 자라준 것이 참으로 고마우며,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특별히 경험해 보니 죽음은 무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잘 살기만 하면 두렵지 않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잘 사는 길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일생 추구해 온 돈, 명예, 권력, 지위는 물론, 건강까지도 죽음 앞에는 먼저 죽습니다. 사랑만이 죽음을 초월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영생하게 합니다.
저는 지금 고인이 마지막 날 제게 선물한 책을 읽으며 9월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밑줄 친 부분, 체크한 구절에 마음이 머무네요. 하나 나눠 볼게요.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어느날 나는 그와 함께 식당에 갔다.
식당은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늦어지자
친구는 여종업원을 불러 호통을 쳤다.
무시를 당한 여종업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난 지금 그 친구의 무덤 앞에 서 있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는데
그는 이제 땅 속에 누워 있다.
그런데 그 10분 때문에 그토록 화를 내다니.
막스 에르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