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31
괜히 써보겠다고 했다. 사랑에 관해서 말이다. 어제 저녁, 아끼고 존경하는 친구와 대화하면서 도대체 사랑이 뭐냐고 서로 물었다. 우리는 둘 다 사랑에 실패했고,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지 지레 좌절하면서 오늘 아침, 사랑에 관한 글을 써보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못 쓰겠다. 내가 사랑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릴 수 있으랴. 나뿐 아니라 사랑이 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와 같은 결의 영혼을 가진 그에게서 동성 간의 더할 수 없는 우정을 느낀다. 그를 포함해서 내게는 네, 다섯 명 정도의 매우 진실 된 친구들이 있다. 또한 오늘 새벽, 아들의 문안 전화를 받고 자식의 마음 씀과 부모로서의 사랑을 서로 표현했다. 즉, 필리아 philia와 아가페agape 범주의 사랑에서 신뢰 있고 안정된 관계를 확장해 나간다.
문제는 남녀의 사랑, 에로스eros에서만큼은 맹탕이라는 것이다. 속된 말로 남자보는 눈이 없다. 연애도, 결혼도 내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남들은 에로스의 문을 척척 열고 들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열쇠가 없어 매번 쩔쩔매고 당황하고 실패하고 절망한다. 이용당하고 학대받고 채이고 버림받는다. 헌신하지만 헌신짝 된다. 그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 이혼 후 지난 7년간의 과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내면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분석하고 또 분석하면서 이제 겨우 실마리를 쥐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한 가지만 말한다면 ‘자신의 굶주림’이 관계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고 파탄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 허기, 그 공허의 근원을 메워야 한다. 스스로 메워야 한다. 그것은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망령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을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