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죽음수업 7

by 신아연


기사만 안 쓰면 기자질할 만하다더니, 원고만 안 쓰면 띵까띵까하면서 자가격리할 것 같습니다.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요? 나가서 대접받고 딴엔 폼 잡고 할 수 있는 게 기잔데, 그때까지는 좋았는데 들어와 기사를 쓸 때부터는 죽을 맛이라 나온 소리라네요. 기자야 본질이 기사쓰는 거니까 그렇다 치고, 자가격리의 본질이 원고 쓰기는 아님에도 써야 할 원고 때문에 자가격리시간조차 너무 빨리 가네요.

20210825_081400.jpg?type=w773

엊그제 글에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말이 나왔지요. 소개드린대로 류시화가 엮은 잠언시집의 제목이지요.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이 말을 "보다 성숙해지고 깊어지고 나서 뒤돌아보니 그때 참 미숙했구나, 지금이라면 이렇게 처신했을 텐데 그때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구나, 역시 미숙했어.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지. 지금은 분명 그때보다는 나은 선택을 하겠지만 이 또한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읊조릴테지. "라는 자기 성찰적 의미로 이해하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지요. 함 들어보실래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보세요.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보다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철이 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원뜻은 그게 아닌거죠. 우리가 원하는 식으로 비틀어 이해했던 거죠.


aa9_56_i1.jpg?type=w773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


스위스에서 생을 마친 분은 제게 몸소 그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은 생전에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를 자주 인용하셨습니다. 가시기 전날도 당신의 묘비명을 대신하여 이 말씀을 하셨지요.


"인생에서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은 없어요. 주문한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그야 하는 수 없고, 좀 더 산다면 다른 사람들을 더 도울 수 있지만 그것도 충분히 했어요. 이제는 자유롭고 싶어요."


그분을 알고지낸 지난 3개월 간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를 다시 뒤적여봅니다. 죽은 자는 우리에게 말 없는 가르침을 줍니다. 산 자는 죽은 자를 통해 배웁니다.


스위스를 다녀온 후 저는 가벼워지고 단순해지고 명랑해지고 명료해졌습니다. 당당해지고 자신만만해졌습니다. 제 자신이 아주 좋아지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본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하는 글쓰기가 참 귀하게 여겨집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제 인생은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합니다. 재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더 크게는 하늘에 감사하게 됩니다.


붉은 색으로 표시한 곳은 그분 밑줄을 그은 부분입니다. 저도 같은 부분에 밑줄을 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