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32
호주에 사는 아들의 여자 친구가 나를 똑같이 닮았다고 한다. 사랑에만 나이도, 국경도 없는 게 아니라 영혼도 그럴 수 있구나. 나와 같은 영혼을 가진 젊은 서양여자라니!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에는 외모가 완전히 똑같은 역사교사와 무명배우가 등장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영혼이 판박이라니, 이거야 원.
아들에게 여친에 대해 묻는 대신 엄마인 나에 대해 물었다. “재주 많고 에너지도 많고 여리고 사랑스럽지만,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취급 당하고, 최소한의 자기 몫도 챙기지 못한 채 늘 빼앗기는 사람.” 이 정도라면 나도 불쌍하고 그 아가씨도 안쓰럽다.
심리학 용어에 ‘반복강박’이란 것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상황을 반복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으로, 이런 충동을 지닌 사람은 자기 자신이 그와 같은 사건이나 경험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부모와 유사한 배우자를 만나 부모와 유사한 결혼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나, 전 남편, 전 아내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에게 끌려서 재혼을 하고 같은 사유로 다시 이혼하는 경우가 한 예다. 부모의 파탄 난 관계를 자신이 되찾아 주고 싶고, 전 배우자와의 어긋난 인연을 다시 이어 온전한 부부로 회복하고 싶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려는 무의식적 강박 심리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완결되지 않은 그림, 미완의 환상이 있기에, 그리스 신화 속의 사이렌처럼 부모와 닮거나 전배우자와 유사한 이성에게 치명적 유혹과 매력을 느낀다. 다행히 아들은 불행했던 제 부모의 관계 패턴을 파악한 듯하지만, 과연 그 전철을 밟지 않고 자신만의 오롯한 사랑의 길을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