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판일지(23)
추석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저도 이사 후 새 보금자리에서 잘 쉬었지만 더위는 피해갈 수 없었네요.
무척이나 더운 추석 후 오늘부터는 다시 '목금 재판일지'로 돌아옵니다.
글 메뉴가 '재판일지'일 뿐, 우리 삶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입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아시다시피 저는 제 일상 경험을 재료로 글을 씁니다. 제 삶 자체로 '글 맛집'을 꾸리죠. 또 아시다시피 최근에 제가 소송을 경험했지요. 그 소송내용을 바탕 글로 쓰되, 법률 자문을 받으면서 알게 된, 그리고 지금까지 몰랐던 '나와 너의, 우리의 법'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것이 제 '재판일지'의 의도입니다.
독자 중에는 "소송에서 이겼으면 그만이지 왠 자랑질?" 내지는 "우리가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신아연 재판의 쟁점인 저작권법에 관해서 알아서 뭐하게?" 하실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닙니다. 제가 쓰려는 재판일지는 그런 소리가 아닙니다.
제가 재판을 받는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살면서 재판정에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급적 송사는 피해야 한다. 재판은 지든 이기든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승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저를 염려해서, 가뜩이나 고생인데 어쩌다 그런 일까지 겪게 되었누 하는 위로 말씀인 것, 잘 압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러니 '일껏 생각해서 말해 줬더니 아는 척, 잘난 척한다'는 오해는 부디 마시고, 앞으로 제 재판일지와 함께 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하재열
여러분, 몸이 아프면 병원을 안 가실 건가요?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은 없을수록 좋겠지만, 아프면 병원을 가야 하듯이, 법정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병원에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법원에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병원이든 법원이든 가게 되면 가야 한다는 것이죠.
병원에 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듯이, 오히려 병원에 갈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듯이, 법원 가는 것에도 저어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병원 가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듯이 법원 가는 것도 신나는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병원에 가서 육체의 병을 고침 받듯이, 법원에 가서 너와 나 사이의 이해관계를 분명히 하게 되면 그 자체로 개운해지는 것이죠. 지든 이기든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기면 골치아픈 것에서 놓여나서 기분이 좋고, 진다 한들 '가문의 치욕'일 것도 없이 결과에 승복하면 그만입니다.
제 경험이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글은 신아연 것이다."라는 판결이 나 버리니까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 측에서 더는 왈가왈부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반 년 넘게 죽자고 사람을 괴롭혔지만(자기네 글이라고 우기면서) 속된 말로 이제는 '찍'소리 못한단 말이죠.
육체의 병으로 치면 병을 싹 고침 받았으니 얼마나 병원이 고맙겠습니까. 같은 의미로 저는 법원이 고맙습니다. '내 것, 네 것' 구분 못하는 씨알재단에게 권리 개념을 분명히 가르쳐 주었으니!
그럼 왜 유독 송사는 당하지 말아야 하고, 법정엔 서지 말아야 한다는 사고가 굳어지게 된 것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내 것, 네 것 구분해 주는 것이 법이자 정의'라는 개념이 머리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