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판일지(24)
'내 것, 네 것 구분해 주는 것이 법이자 정의'라고 어제 말했습니다.
법은 '2진법'입니다. '내 꺼, 아니면 니 꺼'입니다. 내 꺼, 니 꺼 구분해주는 것이 법이고, 내 꺼가 너무 적고 니 꺼가 너무 많을 때, 거꾸로 내 꺼가 너무 많고 니 꺼가 너무 적을 때 고르게, 균형있게 나누는 것이 정의입니다.
법과 정의(正義)는 그런 정의(定義)입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그러니 "아무개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웃기는 말이지요. 이 말은 아무개란 사람이 착하고 선량하기 그지 없는 성품을 가졌다는 뜻인데, 법은 선악을 가리는 개념이 아니라, 내 것 네 것을 가리는 것이라고 했지요?
사람이 착하고 안 착하고는 법하곤 아무 상관없습니다. 선악판단은 도덕이 하는 것이지 법이 하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아무개는 도덕 잣대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은 말이 될 수 있지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은 말 자체가 안 된단 말입니다.
가령, 우리나라는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하지요. 그런데 우측통행을 하는 것이 선한 건가요? 전에는 좌측통행을 했는데 그 때는 악해서 그랬던가요? 아무개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으니까 우측, 좌측을 멋대로 다녀도 된다는 건가요?
제가 재판을 받을 때 저를 재판정에 세운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의 이창희 사무국장은 판사 앞에서 저를 '나쁜 여자, 사악한 여자, 배은망덕한 여자, 교활한 여자'라며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그러니 이 여자를 벌 줘야 한다며.
제가 그런 여자라고 치죠. 하지만 법은 성질 못된 사람 벌 주는 게 아니라니깐요. 내 것, 네 것 가리는 거라니깐요. 신아연이 아무리 인성이 나빠도 신아연이 쓴 글은 신아연 꺼라는 걸 가려주면 그걸로 끝이라니깐요.
그 사실을 모를 때 이창희처럼 법정에서 상대를 인신공격으로 몰아세우거나 인격적 난도질을 해댄단 말이죠. 법률에 따라 판단 받아야 할 일을 판사 개인 감정에 호소해대니 재판에서 질 수 밖에요.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살면서 절대 법정에 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송사에 휩쓸려서는 안된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법이 아닌 엉뚱한 것으로 나를 옭아맬까봐 겁나서.
법치주의 사회를 살면서 아직도 인치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 뜻이죠.
지금이 원님재판을 받는 때인가요?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머리 풀고 소복입고 원님 놀래키는 장화홍련처럼. 원님 한 마디에, 왕의 기분 따라 없던 죄도 들씌워져 목숨이 왔다갔다 하던 군주시대처럼.
오늘의 결론 : 법은 내 것, 네 것을 가리는 질서이지, 선악판단의 잣대가 아님
다음 주 목요일에는 '내 것과 네 것에는 어떤 것이 있나'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