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두 아들과 불통할 때, 이러다 못 만나고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매년 유서를 썼습니다. 매년이래봤자 내용은 늘 같았습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살아라, 네가 가진 것을 나눠라."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용서를 받았으니, 다시 만났으니 지금 당장 유서를 건네지 않아도 되었지만, 언제가 되었건 제 유언은 동일할 것입니다.
고마운 것은 두 아들은 다른 사람을 늘 돕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죽기도 전에 제 유언이 효력을 발생한 건지, 아니면 애초 유언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건지 여하간 고마운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네가 가진 것을 나눌 것'에 방점을 찍습니다.
유언을 할 정도면 저 또한 평생을 그렇게 살았거나, 그렇게 살지 않았거나(그래서 골수에 사무치게 후회가 되어서) 둘 중 하나일 테지요. 그랬거나 저랬거나 남은 생은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아들들에게 떳떳할 것 아닙니까.
어젯밤 11시 경 가까운 독자의 동생이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나이는 저와 비슷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고,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매순간 생의 의지를 끌어모으며 병마와 싸웠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살려는 사람을 살아나도록 돕지는 못하는 게 인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죽으려는 사람을 도울 수는 있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냐고요?
말 그대로입니다.
죽으려는 사람, 오죽하면 죽으려는 사람, 살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죽는 것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지요.
어떻게? '죽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으로. 즉, 안락사(조력사)를 합법화하는 것으로.
네, 저는 안락사(조력사) 반대에서 찬성으로 좌표를 이동합니다.
제가 하려던 커밍아웃이란 바로 이거였습니다. 안락사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것.
2023년,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과 서울신문에서 대담하던 모습. 그때는 반대했지만 이제는 저도 찬성으로 돌아섭니다.
어제 마침 말이 나와서 어떤 사람에게 그 말을 했더니, 저더러 원래 찬성하지 않았냐고 하는 거예요. 2021년에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제 독자를 배웅하기 위해 스위스 안락사 현장을 다녀온 후, 책으로, 글로, 말로, 강연으로, 신문으로, 잡지로, 방송으로 줄창 반대를 외쳐왔던 저로서는 멘붕이었지만, 원래 그렇게 알고 있었다니 계속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겠습니다. ㅎㅎ
어제 용서와 작별을 고한 상대는 한 목소리로 안락사 반대를 외치던 어느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저와는 내년에 안락사를 반대하는 책을 함께 내기로 할만큼 의기투합했던 분이죠.
그러나 이제 저는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기로 했으니, 더 이상 동행할 수 없고 책도 함께 낼 수 없다는 정중하고 진심어린 사과말씀을 드려야했던 것이죠.
의사선생님은 참 사려깊고 따스한 분이었습니다. 그 대화는 다음 글에서 나누기로 하고 앞서 말한, "나도 살고 싶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죽으려는 것."이라고 절규한 분에 대해, 저의 또다른 가까운 독자인 그분이 겪고 있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기에, 안락사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은 그만 글을 맺겠습니다.
저는 이제 우리나라의 안락사 합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타인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눌 것'이라는 제 말을 책임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