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사 합법화의 날까지 4
제가 5천만 국민을 돕겠다는 것은 과대망상도 아니고 미친 소리도 아닙니다.
5천 만 국민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인류적으로도.
지금 대통령을 보십시오. '생각이 글러먹었기 때문에' 이 따위로 정치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처럼 '생각이 그 사람'입니다. 생각이 좋은 쪽으로 바뀌면, 생각을 계속 훈련하면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주체성을 잃으면, 자기 생각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니에요. 자유가 없고 생기가 없으니까요. 감옥이 아무리 시설이 좋다해도 거기서 평생 살고 싶은 사람은 없듯이.
그렇게 생각을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 일에 제가 글로 일조하겠다는 겁니다. 글로 쓰면 5천 만 국민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찾아갈 필요없이 한 번에 생각을 바꾸게 할 수 있죠. 그렇게 돕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러실테죠.
"신아연 네 생각이 진리냐? 네가 다 옳다는 말이냐? 너나 잘 하세요."
당연히 제 생각이 전적으로 옳을 리 없죠. 다만 저는 용기가 있을 따름입니다. 내가 틀렸다면 기꺼이 내 생각을 포기할 용기가. 더 나은 생각으로 바꿔갈 용기가. 더 숭고한 생각 앞에 열어놓는 용기가. 저의 멘토 바울도 생각을 바꿨기 때문에 위대한 사도가 되었듯이.
천동설에서 지동설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었다면 허송한 시간과 억울한 희생이 없었을 테죠. 이처럼 안락사(조력사) 문제도 생각을 달리 해 보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는 거죠.
생명에 대한 결정권이 신에게 있다는 천동설적 생각에서, 생명은 인간 각자의 것이란 지동설적 생각으로 전환을 한 번 해보자는 거죠.
그렇게 해 보고 아니면 그때는 또 제가 생각을 바꾸겠습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생명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은 일종의 지동설적 인식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나냐? 어째서 내 생명의 주인이 나냐? 신이 아니고. 이것이 '입증'되면 조력사는 떳떳이 설 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니까 죽는 것도 내 맘대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거잖아요.
천동설이 지동설에 밀려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천동설로 설명할 때보다 지동설로 설명할 때가 더 잘 설명되었기 때문이죠. 우주 운행적 진실에 더 잘 부합되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생명의 주인이 인간 자신이냐, 신이냐의 논쟁에서, '인간'이라고 할 때 더 잘 이해되고, 더 자연스럽고, 총체적 삶이 더 성장할 수 있다면 비로소 진실에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도그마에 갇히면 안 됩니다.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에 매몰되면 그 자체가 폭력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 많은 폭력에 진저리를 쳐 온 인류 아닌가요?
그 폭력을 내가 휘두르고 있진 않은지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기독교 교리에 갇혀서 사람을 되레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로 하여금 안락사(조력사)에 대한 태도를 돌리게 했습니다.
또 다시 말씀드리지만 만약 제가 틀렸다면 다시 돌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조력사에 대한 생각을 어떤, 무엇을 근거로 바꾸게 되었는지가 중요하겠지요. 법을 근거로,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헌법 제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에 근거하여 제 생각이 바뀌었고, 따라서 법적 관점에서 조력사 합법화의 타당성을 제시해 가겠습니다.
*조력사 합법화를 소망하는 화, 수요일 글은 <법을 왜 지켜?>를 쓰신 '니꺼내꺼 황도수 변호사와 일문일답 및 토론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인류 지성사와 법리적 관점에서 안락사 및 조력사에 관한 어떤 질문과 토론도 환영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하겠습니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 변호사
법을 왜 지켜?저자황도수출판열린생각발매2022.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