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수업 9
노자 <도덕경> 중에서 얼마 전 연재를 끝낸 '도경'을 올해 안에 책으로 내기로 하고 원고 정리를 하던 중에 스위스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스위스를 다녀오니 조력사 동행기가 쓰고 싶어져서 도경 출간을 내년으로 미루려고 합니다. 가슴이 이렇게 벅차고 이야기 주머니가 터지려고 하는 것을 눌러둔다는 것은 제게는 똥이 마려운 걸 억지로 참는 것과 같으니까요.
저와 그분의 만남은 글로 이뤄졌으니 이별과 마무리 또한 글로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그분과 직접(물론 글로써) 대화하게 된 것은 올해 5월 중순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20년 전부터 저를 알고(물론 글로써) 계셨더라구요. 그분은 저와 같은 시기의 시드니 교민이었고 저는 어디서나 이야기 멍석을 까는 사람이니 당시 교민신문에 연재했던 저의 호주이민기의 오랜 독자였던 거지요.
그렇다면 5월의 직접 대화는 어떤 계기로 마련되었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그 인연은 죽음학 카페에서였습니다. 그분은 카페가 만들어진 2년 전부터 출석했고 저는 올 4월 경에 가입했습니다. 저와 죽음학 카페와의 접점은 류달영 박사가 설립한 성천문화재단(이사장 류인걸)에서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의 죽음학 강좌를 들은 후 찾아졌습니다.
얼마나 인연이 깊은 분이기에 코로나를 무릅쓰고 그 먼나라까지 가서 마지막 길을 배웅할 정도냐고 궁금해들 하시지만, 인연의 실상은 서로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지 다른 말은 군더더기에 불과합니다. 제가 아무려면 아무나한테 그러겠습니까. 여러분은 책이야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저와 그분은 책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번 생에 저는 책보다가 떠나는 것 같아요. 소유물을 정리해 보니 제가 가진 것은 책이 가장 많네요. 사람들은 흔히 '그걸 읽어서 어디에 쓰게?'라는 말을 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가 '책을 읽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고도 하지요. 그러나 먹고살기 위한 독서는 한 차원 낮은 독서입니다. 진짜 독서는 써먹을 데가 없을 때, 쓸 데가 없는 데도 하는 독서입니다. 가장 지적인 인류가 남긴 위대한 정신과 감성, 지성의 소산인 문학을 평생 사랑했습니다. 책 속에서 마냥 행복했습니다."
저 또한 책 속에서, 책과 함께 살았고 살고 살 것입니다. 제 인생 고통의 순간마다, 외로움의 마디마다, 가난의 고비마다 저를 지켜준 것은 책이었습니다. 그것도 '세상 쓰잘데기 없는' 문학과 철학이 저를 버텨 주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평생 쓸모없는 일에 열정을 쏟아온 것 같습니다. 비싼 등록금 내고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철학과를 다닌 것도 그렇구요. 그러나 장자도 말했듯이 그 '쓸모 없음의 쓸모'로 인해 지금 저는 살아갑니다. 쓸 데 없는 그 일로 너끈히 밥벌이를 하고, 사람꼴도 유지하고, 더러 다른 사람의 위로도 되니까요.
돌아가신 분은 죽음의 순간에 꼭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게 되어 참으로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스위스에서 저는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몇 시간 후면, 몇 분 후면, 몇 초 후면 죽는다는 사실, 그 두려움에 매몰되어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그분은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셨으니까요. 결국 책이 매개가 되어 원하는 사람의 배웅을 받게 되었으니까요.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 할 때 책이 그 완성을 가져다 준 것이지요. (동행하신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게는 제가 마주한 그분의 죽음에 대해서만 의미가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계시나요? 어떤 죽음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죽는다는 자체가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죽음이 어딨냐고 하실 건가요? 그래봤자 다 죽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죽는가만 남습니다.
저는 직접 보고 왔으면서도 안락사가 좋다, 나쁘다에는 여전히 의견이 없습니다. 그 또한 인연이 닿아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다만 '좋은 죽음'을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추천할 수는 있습니다. 바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살면서 책을 한 권도 안 읽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부터 읽으면 됩니다. 지금부터 읽으면 잘 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잘 살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영혼 로또'로 대박 터진 제 말을 속는 셈치고 한번 믿어보세요. 단, 쓰잘데기 없는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524] 행복한 죽음|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