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안락사
오늘부터는 '죽음수업'이란 말을 쓰지 않기로 합니다. '수업'이라고 하니까 제가 무엇을 가르치는 것만 같아서요. 저는 남 가르치는 것에는 원래도 딱 질색인 사람인데 하물며 죽음을 가르치다니요, 죽음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다고 '죽음준비'라고 하기엔 구체적인 장례절차처럼 느껴져 내용과 안 맞고, '죽음 이야기' 정도로 할까해요. 타이틀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일단 '수업'이란 명패는 내립니다.
죽음은 가르칠 수 없다는 제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제가 한 때 속해있었던 죽음학 카페 회원이라면 당혹감을 느끼실지도. '학(學)'자가 붙었다는 건 객관화할 수 있는 지적인 틀과 전달 체계을 갖췄다는 의미인데 '학'으로의 죽음을 부정한다면, 상식대로 죽음이란 결국 개인의 가치관이나 의식의 반영, 종교적 신념 영역일까 하고요.
여기에 대한 답은 일단 유보하기로 하겠습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체험한 것은 나눌 수 있습니다.
김보선 / dance 2011
제가 스위스에 다녀온 후 주변에서 받는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나는 그런 데도 갔다온 사람'이라는 게 대단한 훈장과 벼슬이 되어 한 방에 '영적상류사회'에 편입된 느낌입니다. 흙수저가 갑자기 금수저 되어 지금 살고 있는 신림동에서 강남 한복판에 입성한 것 같은 거죠.
'그런 데'가 어떤 뎁니까? 노골적으로 말해서 사람 죽는 걸 보는 곳 아닙니까. 그것도 제 목숨 제가 끊는 순간을 눈 앞에서 지켜봐야 했지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벨브를 돌려 약물을 주입,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찰나로 넘던 그 순간, 저는 그 분의 발이 식어갈 때까지 꼭 잡고(양손은 아내와 아들이 잡고 있었기에) 그 분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뇌리에 쐐기로 박힌 그 장면, 그 영상은 수시로 자동 소환됩니다. 제 인생을 통튼 강력한 체험이었습니다. 여생의 트라우마로 남느냐, 애벌레가 나비로 날아오르는 결정적 한 방이냐를 가르는 순간이었습니다. 독이 되느냐, 약이 되느냐의 상황에서 저는 운 좋게 후자쪽에 속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비처럼 자유로워졌습니다. 가벼워졌습니다. 밝고 맑고 명랑하고 당당해졌습니다. 섬세하고 명료해졌습니다. 선량해지고 진실해졌습니다. 공감력이 높아졌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의 '속사람'에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할 말, 안 할 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제 삶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스위스 조력사 현장을 다녀온 후 크리스마스 이브의 스쿠루지 영감처럼 새 사람이 된 거지요.
'그런 데를 갔다왔다'는 건 제게 이러한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죽음을 '체험'한 것입니다. 죽음은 각자의 체험 영역입니다. 학문으로의 죽음을 잠시 유보하겠다는 것도 그래서죠. 여러분은 체험과 경험의 차이를 아시나요?
경험은 타인의 삶과 내적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화면으로 지나가듯 그저 일시적 풍경에 불과하지요. 반면 체험은 그 사람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의 내면 뜨락을 거닐어 봄으로 인해 나의 내적 변모를 가져오지요. 그리하여 내가 다른 존재가 되게 하지요. 그가 나의 일부가 되어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지요. 경험이 아닌 체험을 한다면 타인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각자의 영적수준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