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39

by 신아연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의 대사다. 어제 내게는 상당히 풀이 죽을 일이 생겼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야기 끝에 지인이 뜬금없이 한 말이다. 그러면서 “신 선생님은 많은 걸 가졌어요. 그러니 가오잡고 사십시오.” 라더라는 거지.


내게 돈이나 가오가 있을 턱이 있나. 돈은 원래부터 없었고 가오는 어떻게 잡는지도 모른다. 진짜 나는 아무 것도 없다. 사람들은 내 옆에만 오면 떠나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버거워한다. 살면서 내가 못 해 본 두 가지가 있는데 딸을 낳아보지 않은 것과 연애 상대를 차보지 않은 것이다. 딸이야 없으니 없는 거지만, 연애의 끝에서 나는 늘 채인다. 그렇다고 어제 실연당한 것은 아니고 역시나 인간관계의 아픔을 겪었다.


늘 사후 약방문이지만 이번에도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나는 벽()이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언제 보면 한 가지에 지나치게 빠져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인연이 닿으면 미친 듯 몰입하는 것이다. 말로는, 글로는 끊임없이 균형을 찾지만 그러는 자체가 바로 벽이 있다는 증거다. 뚱보가 다이어트를 하는 것처럼.


실의에 빠져 책을 뒤적이며 위안거리를 찾는데 어쩌면 나의 편벽이 바로 나의 ‘가오’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무엇이 찾아왔다.


“나는 일찍이 벽이 없는 사람과는 더불어 사귈 수 없다. 그 까닭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결점이 없는 사람 또한 사귀기에 마땅하지 않다. 그 까닭은 진실한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명말청초의 문인이자 사학자인 장대 『낭현문집』에 나오는 말이다.


“벽이 없는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독창적인 자신의 세계를 갖추고 전문적 기예를 습득하는 일은 오직 벽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조선 실학자 박제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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