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년남성의 사랑

일상에 철학을, 철학을 일상에 38

by 신아연

가는 비가 내리는 오후 5시 무렵,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한 독자의 문자를 받았다.


“먼저 간 집사람에게 쓴 연애편지 몇 통과, 혼자 어린 남매 키우면서 납골당에 찾아가 하소연하며 써 넣었던 편지가 몇 편 있습니다. 말로는 표현 못할 속마음이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 풀렸으니까요. 솔직히는 편지를 쓴다고 마음이 풀린 건 아니고 스스로 위안하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다짐의 계기가 되었지요. 거진 10년이 넘은 것들이지요. 이제 재혼하여 새 출발하는 마당에 정리는 해야겠고... 해서 다시 읽어보는데 마음 한 편이 울렁거리네요. 사람마음이란 게 이런 건가 봅니다. 비록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지만 아직도 아내가 가슴에 아련히 남아 있는 걸 보면... 정리해야겠지요? 오늘 하루는 그냥 제 서랍에 넣어 두기로 했지만 내일은 없애야겠어요.”


“그 마음 제가 안다고 하면 거짓말일테지요. 저는 사별의 경험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 마음이 제게도 아리고 애잔하게 와 닿네요. 산 사람은 결코 죽은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요? 추억은 갈수록 힘이 세지고 나이조차 먹지를 않으니까요. 거기에 환상이 더해지면서 현실의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지요. 그것뿐이라면 편지를 없앨 수도 있겠지요. 단순히 연애편지라면 말이죠. 하지만 부부 사이에 남겨진 두 자녀를 혼자 키우시면서 가슴 속 아내와 주고받은 대화는 한 가정의 애틋하고 소중한 기록입니다. 비록 답장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고달픔과 그리움에 무너지려할 때마다 선생님을 지탱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 편지를 구태여 없앨 필요가 있을까요?”


재혼한 아내에게 충실하려고 전 아내와의 마음 속 대화조차 지우려는 한 중년남성의 순수하고 지고한 사랑이 여운을 남긴다. 오늘 아침, 헬렌 켈러와 다른 몸을 지닌 하나였던 애니 설리번 선생이 남편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면서 한 말을 그분에게 들려 드리고 싶다.


“사랑하고 성공한 것은 좋은 일이다. 사랑하고도 실패한 것은 그 다음으로 좋은 일이다. 가장 좋은 일은 실패했지만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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