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7
매월 중순경이면 출판사에서 한 달간의 책 판매 현황을 알려온다. 어제도 내가 쓴 소설과 에세이가 각각 몇 권 씩 팔렸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고마운 마음에 앞서 부끄러움이 먼저 든다. 책을 산다는 것은, 특히 소설이나 에세이를 집어든다는 것은 지은이의 마음과 영혼에 닿고 싶다는 의미다. 속내를 터놓고 내밀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미다. 내면의 뜨락에 저자를 들여놓고 싶다는 의미다. 속살을 부비며 위무받고 싶다는 의미다.
나는 그런 초대를 받을 수준이 못 된다. 사람도 글도 한참 못 미친다. 말재주로, 글재주로 그럴 듯하게 포장만 한 것 같아 부끄럽다.
자기 그림을 산 사람에게 제대로 못 그려 미안하다며 다시 그려주겠다고 한 이중섭처럼, 나도 내 책을 산 사람들에게 다시 써 주겠다고 하고 싶다. 책이 많이 팔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풀이 죽고 마음이 졸아드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함민복 시인의 시 <긍정적인 밥>을 떠올린다. 내 책이, 내 글이 따뜻한 밥 한 그릇만 되어도 더 바랄 게 없겠다.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 한 권이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