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일어설 수 있다.

by 이광훈
Sahara Race (Namibia) 2017 - Stage 2 - 113.jpg


1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사막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 하지만 준비하는 도중,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대회 참가비로 약 800만 원 정도의 금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사막마라톤을 조사했을 때, 참가비는 US$3800(한화 약 450만원)이었다. 그런데 참가비 외 비행기 티켓, 현지 체류비, 장비 값 등 추가로 약 350만 원이 더 필요했다. 대회는4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었고 수중에 돈은 하나도 없었다. 기존의 생각했던 참가비 450만원은 다니고 있던 음식점 아르바이트로 충당할 계획이었는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 했다.

‘이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닌데, 지금 당장 공장에 들어

가 일한다면 충당할 수 있을까? 체력훈련은 어떻게 하지? 정말로

포기해야하나..’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방학기간동안 800만원을 모으고 사막을 달릴 수 있는 체력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집안사정을 뻔히 알았기에, 부모님께 선뜻 말씀드리지도 못했다. 내 손으로 해결해내가야만 했다. 조금 더 대학생다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아이디어 하나가 있었다. 당시 수능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등학교에서 학교로 입시설명회를 들으러 오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참가비 후원이 필요하고, 학교는 홍보가 필요하다. 그럼 사막마라톤이랑 학교홍보를 접목시켜보자.’

학교에서 사막마라톤 참가비 후원금을 지원받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2주 동안 열심히 제안서를 써내려갔다. 그동안에 공모전 경험들을 살려, 총 45페이지의 제안서를 완성했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학교 대외홍보실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영학과 이광훈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번에 사막마라톤에 출전하는데, 학교홍보에 도움 되는 프로모션들을 준비해봤어요.”


분위기는 생각보다 싸늘했다. 분명히 모두 내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고 자기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제일 앞에 계신 분이 입을 떼셨다.

“그냥 책상위에 두고 가요. 저희가 검토하고 연락드릴게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며, 잘 부탁드린다는 얘기만 남긴채 홍보실을 빠져나왔다. 솔직히 학교에 이런 학생이 있냐며, 칭찬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강연이랑 책에서는 이런 고난을 잘만 해결하던데, 다 거짓말이었어..’


혼자서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마냥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다시 대외홍보실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사막마라톤 프로모션 관련 문제로 방문했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해주셨다.


“학교에서 학생 개인적인 대회에 장학금을 주는 사례는 없었어요.

연락이 늦어서 미안해요.”


이미 연락이 늦어질 때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거절답변을 들으니 속상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사막을 가기 위해서는 더 뛰어다녀야 했다. 나는 곧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프로모션 제안서 쓰는 법에 대한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학교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었기에, 홍보가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업들에게 제안서를 써보는 전략으로 바꾸었다. 제안서관련 책을 여러 권 읽고 나니, ‘내가 쓴 제안서는 정말 보잘 것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 위해, 쓸데없는 정보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대회개요부터 규칙까지 추후에 설명해도 될 정보들이 너무나도 방대하게 적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많은 정보들이 들어가 있어야지, 잘 쓴 제안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5페이지나 되는 제안서를 바쁜 업무를 처리하는 와중에 꼼꼼히 읽어줄리 만무했다. 제안서를 5장으로 첨삭했고 사막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한 필수장비들을 후원받아보기 위해 알고 있는 모든 스포츠브랜드들을 리스트업했다. 브랜드별로 최근 기사들을 분석했고 어떤 사회공헌을 하는지도 공부했다. 브랜드별 제안서를 따로 작성해, 홈페이지에 있는 대표번호로 전화를 했다. 마케팅 또는 홍보부서로 연결해달라고 한 다음, 컴퓨터 앞에 적어둔 대본을 보며 읽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사막마라톤을 준비하는 대학생 이광훈이라고

합니다. 제가 대회 관련하여 00브랜드에 제안서를 드려보고 싶은데,

혹시 이메일주소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대답은 “아마추어에게는 후원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초라서 아직 마케팅비용로 측정된 금액이 없네요.”였다. 스무곳이 넘는 기업에게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보냈지만 딱 한곳에서 이메일 답장이 왔다.“부서 내 회의를 거쳐 고민을 해봤지만, 재정적인 지원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새해부터 열정적인 대학생을 만나 기쁩니다. 힘내세요.” 거절하는 답장이었지만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 내가 제안하고 요청할 자유가 있으면, 상대방도 당연히 거절할 자유가 있는 거야. 그건 너무 당연한 거야’ 제안서를 통해서 한곳도 설득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직접 부딪혀가면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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