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함께 달려줄, 그대들과

by 이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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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기에 다양한 방법을 알아보다,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소셜 펀딩이라고도 불리는데 자금이 필요한 사람이나,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말한다. 나에게 더 이상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했다.


나는 ‘젊은 응원, 프로젝트- 꿈꾸는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참가비 후원금 200만원을 목표로 준비했다. 2주 동안 열심히 준비한 끝에, 펀딩 사이트에 프로젝트를 등록할 수 있었다. 후원금액은 5천원부터 10만원까지 후원자가 선택할 수 있었으며, 금액마다 차별화된 리워드를 받을 수 있었다. 유리병에 사막의 모래 담아오기부터 후원자의 이름표를 달고 사막 달리기, 사막에서 찍은 포토엽서 만들기 등 다양하게 리워드를 준비했다. 펀딩만 개설하면 나에게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은 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신만만하게 40일의 기한을 두고 펀딩 목표금액 200만원을 측정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돈이 한 푼도 모이지 않았다. 나는 덜컥 겁이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사막을 못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직접 펀딩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염치를 불구하고 직접 지인들에게 펀딩에 관련된 연락을 돌렸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의 꿈을 응원해주시는 많은 친구들과 지인분들이 계셨지만, 괜히 한마디씩 거드는 지인들도 적지 않았다.

“광훈아, 참가비도 엄청 많이 드네.. 차라리 그 돈으로 유럽여행을 가. 그런 것들 준비할 시간에 영어공부나 하지. 이번에 친구들이랑 필리핀 어학연수 준비 중인데 그 돈이면 충분해. 우리랑 같이 갈래?”


물론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들이었다. 자신들은 그저 한마디 거든것뿐이었겠지만, 이런 한마디들이 모여 나에게는 사막을 뛸 수 없게 만드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보란 듯이 사막마라톤을 완주해서, 메달을 목에 걸어 달라진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띵-동’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에, 휴대폰 수신음을 듣고 잠시 밖으로 나와 확인했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소셜 펀딩 첫 후원금이 들어온 것이다. 50만원이라는 큰 금액이 한 번에 들어왔고,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후원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최재혁’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재혁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지만 항상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내가 사막을 달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옆에서 응원해줬고, 둘이서 카페라도 가는 날이면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하루 종일 수다를 떨어도 부족할 만큼 열정 가득한 친구였다. 나는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혁아 5만원 넣으려다가, 0한개 잘못 붙인 거 아이가? 계좌번호불러라. 다시 넣어 줄게.”

“형. 저 이거 용돈 조금씩 모아서 적금 들던 돈이에요. 적금만기까지 2달뿐이 안 남았는데, 깨서 형 드리는 거예요. 첫 후원금이 빵빵해야지, 다음 후원금도 술술 들어오죠.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항상 뒤에서 응원할게요!”


재혁이는 민망했는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일을 하러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재혁이의 주머니사정도 뻔히 알고 있던 나였기에, 고마우면서도 너무 미안했다. 또 이런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이 든든했고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펀딩을 성공한다고 해도 아직 참가비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혹시 학교에서 참가비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해서 친한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조언을 듣기로 했다. 학교에서 참가비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쭤보던 중, 교수님 한분이 나의 도전을 좋게 봐주셨고 나에게 말씀해주셨다.

“그런 문제는 학보사에 계신 정일근 원장님을 찾아뵙고 상의를 드려봐. 학교 내부사정을 잘 아시는 분이시거든.”


나는 교수님의 연락처를 받게 되었고 연락 후, 다음날 바로 찾아뵙기로 약속했다. 무작정 부탁을 드리면 실례일 것 같아, 밤을 새어그동안의 학교성적과 공모전 수상경력, 버킷리스트, 대외활동 등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서 20페이지 책으로 만들었다. 다음날 떨리는 마음으로 학보사 원장실 문을 열었다. 원장님은 앉으라는 말과 동시에, 사막에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셨다. 나는 준비한 책을 드렸고 자기소개부터 사막마라톤 개요까지 열심히 설명해드렸다.

“그래서 얼마가 필요하노?”

“학교에서 후원금을 얼마나 도와주실 수 있나요?”


나는 너무나도 패기 있게 되물었다. 사실 정말 무례한 대답이었지만 600만원이 부족하다고 말씀드리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바로 거절하실 것 같았다.

“학교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방법은 모르겠고, 내 사비로 네 비행기값 정도는 해줄게. 대신에 다녀와서 학교신문에 글 한번 멋지게 써봐라.”


드디어 사막을 갈 수 있는 한줄기 빛이 보였다. 하지만 아프리카까지 가는 티켓 값이 적은 돈이 아니었기에, 교수님의 사비로 내주신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학교에서 따로 후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오늘 처음 뵙는

데, 교수님 사비로 이렇게 주시면..”

“괜찮다. 너도 다음에 어른이 되면, 너처럼 꿈이 있는 친구들한테

더 많이 베풀어주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지금도 나에게 원장님처럼 그런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내리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장님은 나의 꿈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고, 나는 그런 원장님의 마음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원장실을 나오면서 ‘사막마라톤 두 다리가 버티지 못한다면, 기어서라도 꼭 완주한다. 그리고 앞으로 꿈꾸는 청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는 삶을 살겠다고’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펀딩 또한 31명의 후원자분들 덕분에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비로소 사막에 조금 더 가까워졌고 사막의 밤하늘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펀딩과 교수님의 후원을 제외한 나머지 500만원 정도 되는 돈은 아르바이트와 자취방 보증금을 빼서 충당했다. 당시 살고 있던 자취방 집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보증금 중 일부인 200만원을 잠시 돌려받았다. 물론 사막들 다녀와, 다시 열심히 일해서 갚을 계획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철없었던 행동이라고 생각 들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실패한 제안서들이였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으며, 그로인해 내 꿈은 더 확고해졌다. 비록 몸은 떨어져있겠지만, 나와 함께 사막을 달려줄 31명의 진정한 내 사람들을 알게 되어서 기뻤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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