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너가 못나서가 아니야, 숨겨야할 부끄러운일이 아니야, 도움을 요청해줘

by 한송이

봄이는 뭐든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아이였다.
아침이면 제일 먼저 교복을 단정히 입고, 준비물을 꼼꼼히 챙겼다. 수업 시간엔 누구보다 먼저 손을 들었고, 청소 시간에도 부지런했다. 선생님은 종종 웃으며 말했다.

“봄이는 정말 믿음직해. 모범생이야.”

그 말은 봄이의 하루를 환하게 해주는 말이었다.
부모님은 바쁘셨고, 집에서 따뜻한 말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봄이는 학교에서 더 잘하고 싶었다. 더 열심히 해서 누군가에게라도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곱게 보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저 애 또 선생님한테 꼬리쳐.”
“청소 열심히 하는 척, 으휴.”
“지 혼자 착한 척이야.”

그런 말은 처음엔 그냥 흘려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쉬는 시간에 말 걸어주는 친구가 없었고, 급식 시간엔 봄이의 옆자리를 피했다. 필통이 사라졌다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뒤에서 킥킥거리며 말했다.

“쟤, 자기만 잘난 줄 알아. 우리 반 망치는 주범이지.”

봄이는 점점 더 작아졌다.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웠고, 교실 문을 열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어느 날, 봄이는 복도 게시판을 무심코 지나치다 조그마한 전단지 하나를 발견했다.
노란색 바탕에 적힌 글씨.


�️ “학교폭력 고민이 있다면, 혼자 참지 마세요.”
☎️ 학교폭력 상담전화 1588-9128


봄이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전단지를 조심스럽게 접어 가방 속 깊숙한 곳에 넣었다.
누가 보는 게 괜히 부끄러웠다.
그냥…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때는 전화를 걸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니, 어쩌면 몇 주였는지도 모른다.
그동안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봄이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표정은 굳어갔다.
아침이면 자꾸 배가 아프고,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맡에 놓인 알람 소리가 괴물처럼 들리던 어느 날, 학교에 가려고 가방을 뒤적이다가 무언가 작게 ‘툭’ 떨어졌다.

노랗고 낡은 종이 한 장.
조그맣게 접힌 전단지였다.
기억이 났다. 그날 복도에서 급히 접어 넣었던 바로 그 종이.

손끝이 살짝 떨렸다.
봄이는 그 종이를 조심스레 펼쳐 다시 읽었다.
“혼자 참지 마세요.”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어쩌면 그 문장이,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봄이는 혼자 조용히 거실에 나와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은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봄이라고 하는데여… 왕따극복 하는곳… 맞나요…?”

처음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는 떨렸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봄이야, 너무 잘했어. 용기 내줘서 고마워.”
“그 일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절대 너 때문이 아니야.”
“사람들은 이유 없이 상처를 줄 때가 있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지,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봄이야, 모든 친구들이 너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소리가 큰 몇 명이 다가 아니야.”

그날, 봄이는 울면서도 오랜만에 숨을 길게 쉬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무거운 말들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상담 이후에도 세상은 금방 바뀌지 않았다.
놀리는 아이들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봄이는 더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젠 안다.
“내가 못나서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며칠 후, 봄이는 쉬는 시간에 혼자 앉아 있는 또 다른 아이를 발견했다.
늘 말 없이 조용히 있는 친구.
봄이는 자리에 천천히 다가가 말했다.

“저기… 같이 앉아도 돼?”

그 친구는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봄이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작은 용기를 냈다.

여전히 모두와 친해진 건 아니지만,
봄이는 웃는 법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학교의 햇살은 여전히 밝았고,
봄이는 그 빛 속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을 다시 피워내고 있었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분명히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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