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프로젝트(2)

by eunho

코로나가 터진 2020년 2월에 아이는 학교에 등교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방학이 끝난 뒤로 미루어 두었던 나만의 일상은 아이의 무기한 온라인 학습과 함께 관성으로 매일 똑같이 굴러갔다. 어느 날 아침 아이는 줌 수업에 참여했고 나는 1층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때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도 기억난다. 소파에 누워 있다 일어났는데 창밖 자작나무에 새 잎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가지가 바람에 살랑대 초록 기운이 햇살에 반짝 빛났다. 너울대는 가지 끝 집을 따라 둘러쳐진 작은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우연한 기회에 주택으로 이사 오게 된 나는 가드닝에 무지했고 잡초가 우거지고 겨울이면 시든 잎으로 누렇게 된 화단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체념의 기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불현듯 따뜻한 햇살이 맞고 싶어졌다.


‘잡초나 좀 뽑아 볼까....’


나는 비척대며 일어나 현관을 나섰다.

일주일에 두 세 차례, 하루 세 시간씩 한 달간 삽 하나로 무턱대고 김을 매는 일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김을 다 매고 나니 토양이 눈에 들어왔는데 삽으로 들쑤셔 보는 땅엔 굼벵이와 지렁이가 많았다.

지렁이가 많은 땅은 좋은 땅이라고 했으므로 이 땅에 뭘 심어도 될 것 같았다. 식용식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ㄱ자 모양의 화단은 ㄱ의 앞머리 부분은 종일 해가 들어오고 ㄱ의 세로획 부분에는 오후 12시부터 일몰까지 해가 들었다. 세로획 부분을 가운데로 나누어 윗 상단에는 자작나무 8그루가 빼곡히 심겨 있었다. ㄱ의 가로 획 부분과 세로획 부분의 절반이 나에게 주어진 화단이었고 약 열 평 남짓 되었다. 한 달 동안 화단을 정리하고 보니 잡초로 다시 점령시키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었고 남편을 졸라 꽃시장에 가기 시작했다. 도매로 싸게 파는, 큰 규모의 꽃시장이었다. 노지 월동이 되는 식물들을 기준으로 나는 봄 내내 꽃을 사고 심고 가꾸기에 열을 올렸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꽃들을 보며 눈 감기 전이 설렜고, 눈 뜬 후가 즐거웠다.


잡초로 무성한 채 2년을 났던 화단은 그렇게 아름다워졌다. 사람들은 꽃의 이름을 묻기도 했고 철제 행잉분의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예쁜 꽃을 보게 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잡초로 무성했던 곳이 정성이라는 노력이 들어가 기어이는 화사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게 되는 것... 화단은 아름다워졌고, 아름다워진 화단으로 나 또한 이제 초록 식물을 사랑하고 가꾸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도 그런 것이겠지.


이런 순행의 변화, 점진적인 변화는 요즘 넘쳐나는 에세이나 힐링 무비들로 익숙할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기대하지 않은 어떤 계기로 변화되는 삶을 맞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타인의 삶’이라는 독일 영화가 있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던 슈타지인 비즐러가 자신이 감시하던 동독 예술가 드라이만에 의해 감화가 되어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 준다. 비즐러는 잠자는 시간만 빼놓고 하루 종일 드라이만의 일거수일투족을 비밀 도청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에게 큰 영향을 준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모티브의 드라마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드라마라고 손꼽는 ‘나의 아저씨’가 그것이다. 이 지안은 정치와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중심점을 지지하고 살아가는 동훈에 의해 감화되다가 변화된다. 지안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동훈이라는 한 사람을 밀접하게 곁에 두고 관찰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돈 때문에, 자신의 업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람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이런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들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비즐러처럼, 지안처럼.


만일 사람들에게, 잘살기 위한 수단이 전문직 자격증이나, 돈을 벌기 위한 제반의 업들이 아니라, 오늘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과 실천들을 많이 했는가, 오늘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과 삶의 본질에 근접하는 책들을 많이 읽었는가를 기준으로 가치를 매긴다면,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과는 다르게 바뀌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변화하는 것은 순행이나 역행이나 이마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나의 엄마와 아빠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분들이 그렇게 척박하게 살아온 시간들의 두 배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나와 남매들이 애정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들여 그분들이 삶을 가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 방법 중 첫 번째로 두 분이 지내실 수밖에 없는 공간을 그런 곳으로 바꿔 드리고 싶은 꿈을 꾸는 것이다.


3월이 오면 일찌감치 꽃을 피우는 한국 자생종인 미선나무를 심을 것이다. 한국의 야생화인 미선이는 꽃도 약하고 바람에도 금방 시들어 눈물겹지만 작고 잔잔해 어여쁘다. 그다음엔 향이 정말 진하고 좋은 4월 미스김 라일락을, 5월부터 흐드러지게 피울 수국도 심겠다. 수국은 물이 바래져 가며 진다. 수채화의 물감이 날리듯. 장마 때는 물봉선화로도 불리는 임파첸스를 두겠다. 비를 맞으면 맞을수록 꽃이 풍성해진다.

9월에는 코스모스, 메리골드를 심겠다. 이렇게 달마다 피는 꽃들을 부모님 집을 오명가명 손님 맞듯 손꼽으며 함께 기다릴 것이다. 현관 입구에는 넝쿨로 된 장미를 심을 수도 있겠다. 엄마가 좋아하시니까. 강아지 산책을 나가자고 엄마에게 지청구를 할 것이며, 아빠에게 근사한 시멘트로 된 개집을 만들어 내라고 농담 삼아 건네기도 할 수 있겠다. 이사한 기념으로 식수를 하고 아빠에게 나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겠다. 근거리에 사시니 모시고 여행을 다니며 모은 돌들로 작은 전시 공간을 선물로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삶에 윤기를 낼 수 있는 여건들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나의 해피엔딩 프로젝트는 언제고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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