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에 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어릴 적 나만의 공간이 없이 자라 그랬는지 몰라도 언젠가부터 주거지의 안락함과 그것이 주는 만족도를 알고 고관여가 되었다. 하물며 여행을 가서도 숙소가 마땅치 않으면 여행 후기에 인색한 점수를 주곤 해 애써 계획한 남편을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집을 존재가 머무르는 공간이라고 했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해 보면 걸맞은 공간이 있어야 존재는 존재로서의 의식을 비로소 자각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어머님과 친정엄마가 편찮으시기 시작하자 주거지에 대한 이러저러함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믿을 수 있는 병원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은 건강을 관리하고 이미 걸린 병에 대한 케어를 어렵게 한다는 것. 와중에 삼성병원 인근 아파트의 실거래가를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이미 병세권이라고 해서 이에 대한 수요와 인식이 자리 잡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가 들면 가장 가까워야 할 곳은 도서관이나 이쁜 카페, 마트보다는 병원을 우선순위로 두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택에 살고 있어서인지 집의 구조와 설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시설적인 측면에서 체계가 안정되어 있고 나라의 보조도 잘 되어 있는 듯했다. 복도에 안전바를 설치하여 잡고 일어서거나 걸을 수 있게 한다든가 좌변기에 안정적인 자세를 잡을 수 있는 철제 기둥을 설치하고 집안 곳곳 턱을 없애고 계단이 있는 집이라면 휠체어 리프트나 작은 간이 승강기를 설치해 두는 것들이었다.
그런 구조적인 개선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가꿀 수 있을, 흙이 있는 작은 마당, 한번 심어 놓으면 어렵지 않게 나무를 키울 수 있는 공간, 반려 동물과 함께 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 평수. 밖의 풍경을 살필 수 있어 비가 오면 비를 보고 눈이 오면 눈을 보며 사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외부와 맞닿은 면이 있을 공간. 그런 공간 공간들이 집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했다. 거기에 산책로가 가깝다면 완벽할 터였다. 바람에 나무가 흩날리는 것을 보고, 새잎으로부터 초록 기운과 낙엽의 우수를 느끼고, 봄철 여름철 철철이 피어나는 꽃을 사다 심을 수 있는 그런 공간. 내외부로 존재의 숨통을 트여주며 숨결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집. 그런 주거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캐나다에서 딸기 농장을 하는 크레이그 모리슨은 알츠 하이머에 걸린 아내를 위해 자녀들과 오래 함께 살던 크고 계단이 많으며 복잡한 집 대신, 바다가 바라 보이는 곳에 작은 집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제목은 ‘해피엔딩 프로젝트’.
수 십 년을 그 집에서 지냈으나 알츠 하이머에 걸린 아내는 바뀌어 있었으므로 그 구조에 적응을 하지 못해 부상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작은 집을 짓기 위해 바뀐 건축법과 맞서 싸우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자녀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자는, 남편인 모리슨 보다는 손쉬운 선택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리슨은 이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아내를 곁에 두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영화의 원제는 ‘still mine’이다.
친정 엄마 아빠의 주거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그분들의 쓸모없는 것들을 향유하지 못함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여가라는 것을 즐겨보지 못하셨다. 삶의 여유, 아름다움에 관한 활동들을 하지 못하셨다.
칸트는 어떤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준 중 하나로 ‘쓸모없음’을 들었다. 생활 어디에고 쓸모가 없을 것. 그런 비실용적인 것들을 기준의 하나로 한 것이 아름다움으로 불린다고. 엄마와 아빠는 생활 어디에고 쓸모가 없는 것들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시멘트보다 더 단단하고, 아니 어쩌면 지구의 지층보다 더 튼튼하게 유지시켜야 할 일상의 궤도를 지켜내느라 그들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갔다. 이제는 그 어떤 심미안도 지니지 않게 되었고 단단한 무감성의 외피는 웬만한 자극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아빠의 청준사진을 들여다보면, 아빠는 아름다운 돌들을 모을 줄도 아셨고, 수형이 훌륭한 동양 난을 보는 눈도 있으셨는데. 언제 고부터 아빠는 일절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사진으로 조차도 그런 것들이 남아 있지 않다. 엄마가 장미꽃을 좋아하시고 가요 중 유일무이 좋아하는 노래가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라는 것은 십 년에 한 번씩 알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었다.
그분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변화. 사람이 변화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