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어스 브릭스의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by eunho


MBTI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믿지 않다기보다는 과신하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남의 MBTI는 과소평가하지만 나와 남편의 MBTI는 과대평가한다. 이렇게 잘 들어맞을 수가 없다. 남편의 MBTI를 알고 남편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은 INTP다. 남편은 그래도 자기 극복적 INTP(이하 인팁)다. 결혼생활에서 인팁은 어떤 면에서 상대방을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남편은 나를 예외로 두었다.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을 때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남편은 평일 저녁 11시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평균 7시간의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삶의 질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던 당시 나는 남편의 이런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았다. 남편은 약속 시간에 자주 늦고는 했다. 어딜 가야 할 때면 시간 엄수가 철칙인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어쨌든 많은 부분에서 남편과 나는 달랐다.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사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자신의 시선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지금은 남편의 장점을 알겠다. 아주, 꼭,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외에는 시간 감각이 남보다 느린 게 흠이지만 –정확하게는 자신의 시간 감각이 확고한 것- 지금은 남편의 그런 점을 닮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남을 의식하지 않으니까.

남편의 다른 이해할 수 없었던 점 중 또 다른 한 가지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네가 만약 로또 10억에 당첨된다면 뭘 하고 싶니,

우리가 만약 세계여행을 간다면 어느 나라를 가고 싶니,

만일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된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니,

IF 너에게 서재가 생긴다면 어떻게 꾸밀래, 네가 작가가 된다면 어떨까... 등등..

'오 주여',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계획형 ISFJ인 나는 마음이 심히 심란해지고 힘들어진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므로 남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고, 나 또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한다. 이것에 대해 이견을 좁히는 과정도 우리에게는 지난했다.

위에 나열한 일들은 부분적으로든 완전하게든 모두 이루어진 일들이다. 나는 24평 아파트를 떠나 나만의 서재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 이탈리아, 네널란드를 도는 여행을 해보았으며,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 로또는? 로또만큼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남편은 자신의 힘으로 많은 것을 일궜다. 이것들이 십 년 사이 일어난 놀라운 일들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남편은 그런 이야기를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며 철저하게 계획을 짜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지향하나 현실적이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현실에서 붕 떠 있는 듯 보이나 누구보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행동하는 남편. 현실적으로는 엄두를 못 내는 일들이기에 현실적인 생각만 하는 나는 현실적인 행동도 못하는 것 아닐까... 나의 한계를 내가 만들어 가면서 말이다.




우리의 위시리스트 중 가장 살아보고 싶은 나라는 이웃나라 일본이었다. 우리는 일본의 디테일을 사랑했다. 노포이지만 깨끗이 쓸고 닦아 광이 나는 테이블, 표면적이 작아 한여름에 마시면 시원하다 못해 치아까지 시린 작디작은 얼음을 가득 채운 잔을 내줄 줄 아는 센스, 깨끗한 차량으로 안전하게 행선지에 모셔다 주는 유니폼 입은 기사들, 다소곳한 서비스 마인드와 태도, 작고 세심한 모든 굿즈들, 밤이 되면 조도가 낮게 깔리는 가로수들, 작은 동네지만 각기 개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집안 팎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아는 깨끗한 국민성.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다테마에와 혼네(本音, 사람의 본심)를 두고 겉과 속이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혼네는 우리 가족들끼리, 친한 지인들끼리만 나눠도 충분하다. 다테마에(建前, 의례적인 말이나 공적인 입장)라도 나이스하면 그만인 것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다테마에조차 챙기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일본을 편애하였지만 지진이 나고 극우파들이 득세하고 일본은 점점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후퇴하고 있으니 이 위시는 점점 위시리스트에만 머무르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남편은 인생 제2막에 대해 이야기했다. 광고 회사에서 20여 년 넘게 일을 했으니 그 분야에서 남편은 수성을 한 셈이었다. 당장 몇 년은 남편이 회사에서 더 일할 수 있겠지만 업의 특성상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노후까지 쭉 이어질 수 있는 경제활동과 자기 계발, 자아실현의 장에 대한 계획이 이제 시작되어야 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아하는 남편과 어느새 거기에 젖어든 내가 나눈 인생 제2막의 직업들은 이러하다.

이쁜 지역에 살면서 놀러 오는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가족사진을 찍어주면 어떨까. 나는 스케줄을 잡고 사진들을 보정하고 남편은 사진을 찍는다.

평소 어떤 문제들에 대해 객관적 분석을 잘하는 남편의 장점을 살려 온라인 고민 상담소를 내는 것은 어떨까. 이름은 혼꾸녕 닷컴. 비밀 회원제로 운영한다.

부동산을 하면 어떨까. 시중에 많은 그런 부동산이 아니라 이쁜 단독 주택이나 특정 목적으로 집을 찾는 이들을 집과 매칭해 준다. 시스템을 도입해 차별화된 부동산을 만드는 것. 나는 그 옆에 조그맣게 커피숍을 낸다. 거기서 독서모임도 하고 글쓰기 반도 운영해 본다. 함께 일하는 것이다.

심리 상담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서 노년까지 주욱 상담소를 운영하면 어떨까. 그런 일은 집에서도 할 수 있으니 아이가 독립하고 나면 집을 리모델링해서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 상담실장은 내가 하면 된다. 이외에도 많다. 공부방, 목수, 간판 제작업, 물건만 찍는 포토그라퍼 등등.. 남편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 이력이 난 나도 거들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제주도에 사진관을 내고, 남편이름을 딴, 남편이 개발한 폰트의 간판을 제작하고 있으며, 이쁜 주택들을 중매하고 나는 부동산 옆 커피숍에서 커피를 만들며 손님을 맞고 있다. 생각해 본 일 중에는 청소업도 있다. 준&호 클리닝 서비스. 남편은 유명한 각장이(각쟁이가 아니다. 전문가를 뜻하는 ‘장이’이다.)이고 나는 먼지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젖은 물수건이나 물티슈를 집은 채 덤비는 결벽이 있기에 소가구 살림을 타깃으로 서비스의 질적인 면에서 많은 고객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많은 직업 들 중 최후의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조건은 두 가지.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일을 얼마나 즐기고 사랑하며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누군가 생각이 나거나 상황이 되면 그냥 편하게 주고받는 이야기였다. 어머님의 장례를 모두 치른 후 남편은 뉴질랜드 이야기를 꺼냈다. 힘겨운 일들이 단시간 내에 일어났으니 남편이나 나나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뉴질랜드에서 사는 아이의 큰 고모 사진 속 뉴질랜드는, 천혜의 자연과 기온차가 크게 나지 않는 기후, 자본의 부침이 없는 곳이라는 이미지 정도였다. 남편은 아이가 더 어리기 전 그곳을 누리고 오면 어떻겠냐고 했다. 이 역시 큰 틀 안에서의 시뮬레이션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남편은 의외로 진지했다. 막상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한국에서의 삶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적 관계가 꽉 짜여 있고 타인과 타인과의 거리도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 가까워 모두 들여다 보이는 곳. 작은 땅 덩어리 안에서 인구는 차고도 넘쳐, 흘러 다니는 자본들을 담으려는 마케팅들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이런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변인으로 소외된다. 국민성도 그렇다. 옆 사람에게 관심이 너무도 많다. 좋게 말해 그 정과 오지랖을 모두 담아내기에 이 땅은 너무도 좁은 것이다. 정치와 부동산은 연일 안정되지 못하고 시끄럽고, 정해진 길인 양 대학으로 가는 천편일률적인 교육방식들로 학생들은 몸살을 앓는다. 어찌 됐든 큰 줄기는 이런 것. 그냥 쓱 훑어보고 생각해 봐도 이런 것들이 떠올랐다. 한국을 떠날 적극적 이유를 찾기 위해서, 내가 더욱 매정하게 모국에 대한 점수를 박하게 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일련의 이유들이 있지만 한국이 싫어서 뉴질랜드로 떠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전혀 아니다. 한 번도 내 나라를 떠나서 살 생각은 해 본 적 없으니까. 떠나고 싶은 이유만큼 반대로 이곳에서 살고 싶은 깊은 갈망이 있다. 하지만 남편의 제안은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어머님이 계셔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일들이었는데. 죽음의 과정을 지나오면서 삶의 소중함에 대해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래도 일순간에 이렇게 마음에 와닿을 수도 있다니. 나는 이제 내 모국을 떠나 살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진 걸까? 물론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만 말이다. 이 땅에서 우리를 굳건히 지탱해 준 존재가 어머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아이 이전에 원가족의 유사 체험을 진하게 하게 해 주셨던 분. 완전하지 못하셨을지라도 어머니로서 거의 온전하셨던 분. 우리가 한 가족으로 합을 이루도록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주셨던 분.

그런 생각들을 하며 순풍을 타고 하늘을 나는 커다란 풍선이 생각났다.


"이제 곧 하늘에 올라가야 해"....


내 몸피를 보니 거센 기류에도 충분히 바람을 타며 목적지를 나아가도 될 만큼 우리가 부풀어 있다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커지기까지, 이렇게 커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분이 어머님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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